"초고압 전선에 집중"…대한전선 되살린 IMM

입력 2022-01-26 18:07
수정 2022-01-27 02:05
1955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종합 전선제조업체 대한전선은 2008년까지 54년 연속 흑자를 내던 알짜배기 기업이었다. 하지만 주력 사업과 관련 없는 문어발식 확장이 독이 됐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남부터미널, 무주리조트,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 필리핀 세부리조트, 캐나다 힐튼호텔 등에 줄줄이 투자했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 결국 2009년 하나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고 2012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해외 수주가 막혔고 직원들은 회사를 살리겠다며 증자에 참여하느라 수천만원씩 빚을 진 상황이었다. 우리사주를 매입하느라 직원들이 받은 대출은 45억원에 달했다.

IMM PE는 2014년부터 이 회사를 들여다봤다. 회사를 무너뜨린 요인은 온전히 비주력 부문 사업이었고 60년간 쌓인 경험치와 특화된 기술력은 여전히 탄탄하다고 봤다. 산업용 케이블의 글로벌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IMM PE는 2015년 9월 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대한전선의 지분 70.1%를 사들이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케이블만 빼고 싹 팔았다
IMM PE는 대한전선 인수 후 ‘케이블’을 뺀 모든 것을 정리했다. 남부터미널 사업을 1775억원에 매각하는 등 자산을 잇따라 처분하면서 순차입금 비율을 250%에서 100% 수준으로 낮췄다. 우발채무도 4500억원에서 1000억원대로 줄였다.

땅에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도 올려야 했다. 인수 직후 송인준 IMM PE 대표(사진)를 비롯한 새 경영진은 직원들과 한 타운홀 미팅에서 스톡옵션과 격려금 지급을 약속했다. 구조조정 발표를 예상했던 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기에 더해 직원들의 빚을 회사가 순차적으로 떠안겠다는 뜻도 밝혔다. 곳곳에서 직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포상체계와 승진 시스템 등을 재정립하고 이사직을 신설했다. 해외 조직도 수술했다. 브로커에 의존해 저수익 사업을 여러 건 따는 대신 직접 고객을 뚫어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주력했다. 본질 집중했더니 해외 수주 쏟아져성과는 곧장 나타났다.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대형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고수익 제품인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케이블 등 수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했다.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 중동 아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대규모 초고압케이블 전력망 프로젝트 수주에 잇달아 성공했다. 그 결과 2020년엔 2009년 이후 최대 실적을 냈다. 흑자 전환해 268억원의 순이익도 냈다. 지난해에는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1조1210억원)보다 21.9% 늘어난 1조3670억원을 나타냈다.

IMM PE는 2018년부터 투자 회수에 나섰다. 70.1%라는 높은 지분의 부담도 낮추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유동 주식 수가 낮은 문제도 해결하기 위해 우선 몸집을 줄이는 게 필요했다. 다섯 차례에 걸친 블록딜로 총 30.1%의 지분을 4500억원에 처분했다. 나머지 40% 지분은 지난해 3월 호반건설에 252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3000억원을 들여 투자해 5년여 만에 7020억원에 되판 것이다. 대한전선은 블라인드 펀드 ‘로즈골드 4호’에서 투자한 기업 중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기업의 ‘본업’에 집중해 가치를 끌어올리는 IMM 특유의 투자 방식은 다른 투자 기업에도 적용됐다. 여성복 인터넷몰 더블유컨셉을 신세계그룹에 매각해 연 환산 수익률(IRR) 28%를 거둔 게 대표적이다. 올 1월엔 국내 1위 가구업체 한샘을 1조2211억원에 인수했다.

이 밖에 반려동물 e커머스 펫프렌즈에 977억원을, 제약업체 제뉴원사이언스에 3263억원을, 하나투어에 1289억원을 투자했다. 김영호 IMM PE 투자부문 대표는 “올해는 2조5000억원 규모의 로즈골드 5호 펀드도 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