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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이 혼란에 빠진 와중에 금이 투자자산 중 우등생 대우를 받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가능성 등이 촉발한 높은 시장 변동성에 대비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주식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을 버리고 안전자산인 금으로 피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불안한 시장, 금에 몰리는 투자자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금 선물(2월물 기준)은 트로이온스당 1852.5달러에 거래됐다. 전날보다 0.6%(10.8달러) 상승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최근 두 달 동안 가장 높은 가격이다. 뉴욕증시에선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가 인기를 끌고 있다. 다우존스 마켓데이터에 따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SPDR 골드셰어 ETF(GLD)에 지난 21일 하루에만 16억달러(약 1조9160억원)가 순유입되며 사상 최대 기록을 썼다.
경제 통념에 비춰봤을 때 최근 금의 인기는 이례적이다. 금리 상승기에는 보통 투자자산으로서 금의 매력이 떨어진다. 금리 인상으로 채권 수익률이 상승하면 이자를 주지 않는 금의 경쟁력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Fed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는데도 금 가격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금이 주목받는 이유로 △주식과 암호화폐 폭락에 따른 반사이익 △우크라이나 전운 고조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회피) 수요 증대 △마이너스(-) 상태인 실질금리 등을 들고 있다.
올 들어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13.45%, S&P500지수는 8.59% 떨어졌다. 개장부터 폐장까지 하루 변동폭도 역사적 수준으로 커졌다.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가 대비 반토막 나는 등 암호화폐 시장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지정학적 불안도 확산되고 있다.
Fed가 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인플레이션을 완전히 억제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는 여전하다.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기준금리가 상승해도 실질금리(명목금리에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금리)는 마이너스 상태를 이어가게 된다. 아카시 도시 씨티리서치 북미원자재담당 대표는 “안전한 피난처이자 ‘꼬리 위험(발생 확률이 낮은 일회성 사건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위험)’을 상쇄할 수단으로 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의 화려한 시절 돌아오나코로나19가 세계로 확산한 최근 2년 동안 금처럼 영광과 굴욕을 모두 맛본 투자자산도 드물다. 금은 2020년 8월 사상 최초로 트로이온스당 2000달러를 넘어서며 최고 투자처 대접을 받았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침체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유동성을 풀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인 금의 인기가 치솟았던 이유다. 당시 대형 은행들 사이에서는 “1~2년 안에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를 찍는다”는 낙관적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지난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고 ‘디지털 금’으로 주목받으면서 금은 푸대접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암호화폐와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던 지난해 금값은 3.5%가량 떨어지며 2015년 이후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미 금융회사 스톤X의 로나 오코넬 애널리스트는 올 하반기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1900달러로 오를 것이란 의견을 냈다. Fed의 매파(긴축 선호) 성향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가 변수로 꼽힌다. 인플레이션 둔화, 달러 강세도 금값 약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투자은행 UBS의 조반니 스타우노보 애널리스트는 “Fed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강력한 매파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금의 인기는 이어질 것”이라며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금 투자 성과가 우수한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