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까지 실손보험 처리…브로커 낀 사기 기승

입력 2022-01-25 17:58
수정 2022-01-26 01:05
‘보양을 위한 영양제도 보험금 받게 해드립니다.’

병원 홍보회사 간판을 내건 A사는 이 같은 문구를 내세워 환자들을 유인했다. A사의 소개로 B한의원에 내원한 이들은 건강 증진 목적의 보양제를 처방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손에 쥐여진 것은 타박상 등으로 서너 차례 통원 치료를 받았다는 내역의 보험금 청구 서류. 1인당 최대 수백만원에 달하는 보양제 비용은 모두 실손의료보험금에서 나갔다. 이런 식으로 환자 653명을 알선한 A사 대표와 B한의원 원장은 수사당국에 덜미가 잡혔고 각각 징역 2년8개월과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비만 치료까지 실손보험으로 금융감독원은 최근 이 같은 브로커 조직이 개입한 실손보험 사기가 활개를 치고 있다며 소비자경보 ‘주의’를 25일 발령했다. 의료인과 보험 관계자 등이 개입해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브로커의 꾀임에 넘어가 보험금을 허위 청구할 경우 보험 사기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상당수 브로커 조직은 SNS 등에서 합법적인 기업 활동인 것처럼 꾸며 대규모 환자를 불법 모집하고 있다. 평범한 소비자에게 불법 환자 알선을 요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 병원 관계자와 가깝게 알고 지내던 주부 C씨는 병원에 환자를 소개하면 수수료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불법으로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을 찾아 병원에 소개·알선하던 C씨는 결국 징역 1년6개월(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다이어트 시술 등 실손보험 대상이 아닌 시술을 다른 치료를 받은 것처럼 꾸민 사례도 있었다. D병원은 2013년 1월부터 2019년 7월까지 내원 환자들에게 비만 치료 주사 또는 예방 접종 주사를 놔줬다. 그러나 진료기록부에는 식중독·감기 치료 등으로 기재했으며 해당 항목으로 진료비 영수증도 발급했다. 치료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허위 진단서를 내주거나 통원 횟수를 부풀린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이 같은 수법으로 환자 252명이 받아간 실손보험금은 5억3600만원에 달했고, D병원은 건보 요양급여 3337만원을 편취했다. 허위 진료기록을 작성·발급한 의사는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거짓 입원에 수술일자 조작도입원 내역이나 수술일자를 조작한 사례도 적발됐다. E병원은 2013년부터 브로커들이 유인·알선해온 환자에게 백내장 수술을 해줬다. 통원 검사만 받은 환자도 입원한 것으로 꾸몄다. 하루에 동시 수술을 해놓고 이틀에 걸쳐서 각각 수술한 것처럼 허위로 기재하고 거짓 진단서를 작성·발급하기도 했다. 이를 주도한 의사와 브로커는 각각 1500만원과 700만원의 벌금형 처분을 받았다.

금감원은 보험 사기 관련 조사와 처벌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소수의 과잉 진료와 보험 사기로 인해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의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보험사는 불법 브로커와 병원을 보건소에 적극 신고하는 등 ‘보험 사기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은 우선 건강보험공단과 함께 운영 중인 ‘공·민영보험 공동조사 실무협의회’를 통해 보험 사기 조사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 브로커 조직과 연계된 보험설계사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는 경우 형사 처벌과 별도로 설계사 등록을 취소하는 등 행정 제재도 병행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전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브로커의 유혹에 현혹돼 보험 사기에 가담하면 공범으로 형사처벌받을 수 있다”며 “병원에서 사실과 다른 진료확인서 등을 발급받아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에 따르면 보험 사기 행위로 보험금을 취득하거나 제3자에게 보험금을 취득하게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