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휘몰아치는 태풍은 초대형 어선들에조차 큰 위험이다. 그러나 태풍은 깊은 해수를 뒤섞어 새로운 어장을 만든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 태풍 위기는 곧 기회”라며 이같이 말했다. 민영화를 계기로 재창업한다는 각오로 디지털 기반 종합금융그룹 체계를 완성하겠다는 의지였다. 손 회장은 지난 11일 창립기념식 행사에서 ‘항상 앞서가는 새로움으로(New next, Next new)’를 새로운 그룹 슬로건으로 제시했다.
2021년은 우리금융에 도약의 기반을 다지는 한 해였다. 2019년 지주회사 출범 이후 숙원사업으로 꼽혔던 내부등급법을 승인받았고, 연말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 지위에서 내려오면서 공적자금 투입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를 달성했다. 손 회장은 “한국 최초이자 최고의 금융그룹이었던 역사적 자부심을 되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의 모태인 우리은행은 국내 최고(最古·1899년 대한천일은행) 은행이고, 우리금융지주는 2001년부터 2014년 분리매각 전까지 국내 최대 금융지주사 자리를 지켰다. 민영화를 기점으로 1등 금융사로서의 옛 위용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핀테크 기업과 인터넷전문은행을 필두로 한 ‘디지털 태풍’이 금융시장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ABCD 기술(인공지능·블록체인·클라우드·데이터)’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메타버스와 대체불가능토큰(NFT) 등의 신기술도 몰려오고 있다. 손 회장이 “디지털은 금융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본업이 돼야 한다”며 “완전히 새로운 조직문화에 기반한 ‘테크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그는 지난해 말 민영화 후 첫 행보로 ‘MZ세대 특화 금융 플랫폼을 내놓겠다’고 선언했다. 주식·부동산·가상자산 등에 투자하는 MZ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하고, 향후 증권 부문의 인수합병(M&A) 계획과도 연계한 ‘웰스테크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그는 “데이터 기반 초개인화 서비스는 물론 주식 투자까지 가능한 MZ금융 플랫폼을 여름이 되기 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14개였던 우리금융 계열사는 2014년 분리매각 후 한때 6개까지 줄었다. 2017년 말 손 회장이 우리은행장에 오른 이후 M&A와 신규 계열사 설립을 통해 다시 14개(지난 9일 출범한 우리금융 F&I 포함)로 늘어났다. 손 회장은 “브랜드 가치 전반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며 “MZ는 물론 전 세대 소비자가 일상에서 ‘우리’라는 브랜드를 가장 먼저 떠올리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계열사 간 시너지와 투자은행(IB)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증권사 인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며 “디지털 기업에 초기 자본투자를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의 ‘팔로어’로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직원 개개인의 창발적 혁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