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해 작곡가들은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다. 모차르트와 베르디, 브람스와 브루크너 등은 모두 ‘레퀴엠(장례미사곡)’을 작곡했고, 죽음 앞에 선 인간 군상을 그려내 시대를 위로했다.
거장들이 남긴 레퀴엠을 통해 코로나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음악회가 열린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오는 29~3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2022 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의 모차르트 레퀴엠’이다.
이번 연주회에서 서울시향은 세 가지 레퀴엠을 들려준다. 핀란드 작곡가 에이노유하니 라우타바라의 ‘우리 시대의 레퀴엠’, 일본 작곡가 다케미쓰 도루의 ‘현을 위한 레퀴엠’, 그리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오스모 벤스케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임선혜(소프라노), 이아경(메조소프라노), 고경일(베이스), 문세훈(테너) 등 정상급 성악가들이 국립합창단과 노래한다.
미완성인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할 때는 피아니스트 로버트 레빈이 1993년 선보인 레퀴엠 판본을 사용한다. 벤스케 음악감독은 “레빈은 모차르트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판본을 포함해 과거 판본들을 오랜 시간 연구한 훌륭한 음악학자”라며 “레빈은 모차르트가 남긴 스케치 악보를 연구해 쥐스마이어가 삭제했던 ‘아멘 푸가’를 부활시켰다”고 설명했다.
시대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걸 비교할 수 있는 음악회다. 18세기의 레퀴엠과 1950년대 쓰인 레퀴엠이 연달아 연주된다. 16세기부터 레퀴엠은 천주교 장례미사곡으로 사용됐다. 모차르트도 라틴어로 쓰인 기도문을 가사로 삼아 레퀴엠을 썼다. 심판의 날을 마주한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강조했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였다. 송주호 음악평론가는 “낭만주의가 대두된 19세기 말부터 레퀴엠에서 종교색이 옅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정이은 음악학자는 “이제 레퀴엠은 죽은 자들을 추모하고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작품이 됐다”고 했다.
변하는 음악사조에 맞춰 현대음악 작곡가인 라우타바라와 다케미쓰도 과거와 다르게 죽음을 대했다. 죽음을 관조하고, 관객을 위로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 시벨리우스의 뒤를 이어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라우타바라는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1953년 레퀴엠을 작곡했다. 종교적인 가사를 빼고 금관악기만 활용해 곡을 지었다. 다케미쓰도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려고 1957년 레퀴엠을 썼다. 통성기도문을 가사로 쓰지 않고 현악 5부를 위해 작곡했다. 그는 자신의 레퀴엠이 세계 초연됐을 때 “전 세계가 전쟁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 곡 제목에 레퀴엠을 붙인 이유”라며 “음악은 기도의 한 형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론가들은 두 작곡가의 레퀴엠은 현대음악에 속하지만 난해하지는 않다고 평가한다. 두 곡에는 화음이 파괴되고 리듬이 불규칙적으로 전개되는 등 현대음악의 특징이 담기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라우타바라와 다케미쓰가 고전시대 양식을 보존하며 작곡해서다. 송 평론가는 “두 곡 모두 비교적 최근에 쓰인 것이지만 익숙한 선율이 흘러 나온다”며 “라우타바라는 저음을 강조하며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프랑스에서 음악을 배운 다케미쓰도 전통을 이어받아 친숙한 화음을 활용했다. 현대음악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평가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