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화 《귀향》등의 베스트셀러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틱낫한 스님이 향년 95세를 일기로 열반했다.
뉴욕타임스는 틱낫한 스님이 베트남 중부 도시인 후에의 뚜히에우사원에서 별세했다고 22일(현지시간) 전했다. 베트남 출신인 틱낫한 스님은 시인이자 교사, 평화운동가로,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부처’ ‘영적 스승’으로 존경받았다.
1926년 베트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16세에 출가해 비구계를 받은 뒤 24세에 베트남 최대 불교연구센터인 인꽝 불교연구원을 설립했다. 1961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유학하며 비종교학을 가르쳤고,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귀국해 ‘모든 불교는 삶에 참여한다’는 취지의 ‘참여불교’ 운동을 주창했다. 이후 세계를 돌며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과 법회를 열었다. 이 시기 미국의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와 만나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달라고 당부했으며, 이에 감명받은 킹 목사의 추천으로 1967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반전운동에 앞장선 그를 남베트남 정부가 귀국하지 못하도록 하자 1973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베트남 전쟁 난민을 구하기 위해 모금활동을 전개했고, 800여 명의 보트 피플을 구조하는 등 난민구조 운동에 매진했다. 1982년 프랑스 보르도 근교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세운 이후엔 세계인에게 마음의 평화를 위한 수행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1990년 미국에 그린마운틴 수행원도 설립했다.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말을 할 수 없게 된 틱낫한 스님은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2018년 베트남으로 귀국했다. 사후 시신을 화장해 전 세계의 플럼빌리지에 있는 명상 산책로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장례는 뚜히에우 사원에서 1주일간 치러질 예정이다.
틱낫한 스님은 국내에서도 화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을 비롯한 베스트셀러 저서로 잘 알려져 있으며 세 차례 방한했다. 2003년 방한 때에는 “두 개의 한국(남북한)은 어머니가 같은 형제이다.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형제로서 남한이 먼저 싸우지 말자고 제안하라”고 남북관계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2013년 방한 때에는 “감정은 감정일 뿐 우리는 그 감정보다 훨씬 큰 존재다. 한 번 왔다가 사라지는 감정 때문에 우리가 왜 자신을 죽여야 하는가. 마음챙김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조절한다면 기쁨과 행복의 에너지를 일으킬 수 있고, 강렬한 감정을 고요하게 가라앉힐 수도 있다”고 설파했다.
세계 각국에서는 고인에 대한 추모가 이어졌다. 달라이 라마는 고인에 대해 “나의 친구이며 영적 형제”라며 “마음의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진실로 의미있는 삶을 살았다”고 추모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