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오뚜기 3세 함연지 씨(30)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소장 중인 명품 제품인 에르메스 가방을 소개하며 화제가 됐었다. 20여년 전인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 함영준 회장으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라 설명했기 때문이다. 함씨는 이 에르메스 가방에 문제집을 넣어 다니는 등 책가방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초고가 명품인 에르메스는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은 줘야 가방을 구매할 수 있다.
누리꾼들은 "그 비싼 가방을 초등학생 학원 가방으로 사주다니", "재벌 3세라 가능한 것" 등의 댓글을 달며 놀라워 했다. 하지만 최근엔 이같은 사례가 평범한 부모들에게까지 확산돼 '키즈 명품' 선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3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이 국내 유아복 수요를 겨냥한 '베이비 디올' 매장을 연다. 오는 3월 중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문을 연 후 4월에는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점에서도 매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베이비 디올은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자신의 딸을 위한 옷을 디올에 의뢰하면서 탄생한 브랜드다. 가격대는 아동복 티셔츠·원피스가 20만~40만원대, 아우터는 100만~200만원 선이다.
명품 브랜드까지 아동복에 뛰어드는 이유는 빠른 성장세 때문이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발표한 '2021년 하반기 패션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아동복 시장 규모는 코로나19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36.6%의 성장했다. 같은 기간 패션 시장 전체 규모가 10.3% 증가한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증가세다. 통계청 통계를 봐도 국내 유아동복 시장 규모는 2014년 2조1100억원에서 2018년 3조8200억원으로 커졌다. 패션업계에서는 올해 유아동복 시장 규모가 4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유례없는 출산율 저하에 아이 하나를 애지중지 귀하게 기르는 '골드키즈족'이 급부상하면서 나타난 분위기로 해석된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아니라 조부모, 삼촌, 이모까지 나서서 경쟁적으로 선물 공세를 펼치는 이른바 '텐 포켓'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키즈 명품의 성장세도 가팔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키즈 명품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명품업체들은 속속 국내 시장에 키즈 상품 매장을 개설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지난해 8월 문을 열면서 명품 키즈 편집숍 '퀴이퀴이'를 선보였다 '발렌시아가키즈' '끌로에키즈'를 비롯해 '오프화이트 키즈' '마르지엘라 키즈'도 국내 오프라인 매장에선 처음 입점시켰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 서울은 5층 중심부에 키즈 전문 편집매장인 '스튜디오 쁘띠'를 선보였다. 현대백화점도 압구정본점 지하 2층을 리뉴얼하며 명품 아동 브랜드를 강화했다. 펜디키즈는 물론 지방시키즈, 몽클레르앙팡 등을 들여놓았다. 지난해 말 문을 연 대전 신세계 아트앤사이언스에는 대전 지역 단독으로 몽클레르앙팡이 입점했고, 버버리칠드런·랄프로렌칠드런 등 명품 브랜드의 키즈 상품이 줄줄이 입점했다.
이같은 키즈 명품 브랜드 제품들은 성인 제품 못지않게 비싸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손녀가 입어 국내 시장에 알려진 몽클레어 키즈 라인의 패딩은 대부분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버버리칠드런의 경우 로고가 그려진 책가방용 백팩은 105만원, 여성 유아용 트렌치코트는 145만원 등이다. 신발 제품도 30만~40만원대에 판매 중이다.
5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주부 정모 씨(36)는 "딸을 데리고 놀이터를 갔는데 또래 아이들이 몽클레어 패딩이나 버버리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을 봤다. 기가 죽는 느낌이 들어 조만간 백화점에 들러 애한테 명품 브랜드 패딩을 하나 사주자고 남편과 의견을 맞췄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