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조선업체들의 '혈투'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압도적 위치를 가진 시장이지만 연초 주도권은 중국이 잡았다. 한 때 한국 조선산업의 괴멸 위기로 몰아 넣었던 국가적 지원을 통한 저가 수주를 통해서다.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10척의 17만4000㎥급 대형 LNG선 가운데 6척을 후동중화조선이 수주했다. 남은 4척은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이 각각 2척씩을 따냈다. 두 기업에 삼성중공업까지 국내 '빅3'의 시장 점유율이 87%에 달하는 시장이지만 올해 '마수걸이' 수주에선 중국이 치고 나간 모양새다.
중국 1위 조선소인 CSSC(중국선박공업집단) 산하인 후동중화조선은 빅3외에 대형 LNG선 건조 능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조선업체다. 물론 격차는 아직 압도적이다. 작년 말 기준 빅3의 LNG선 수주 잔고는 150척에 달한다. 후동중화는 이번 수주를 포함해 14척에 불과하다.
조선업계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이뤄진 양국 업체들의 수주 계약의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후동중화에 발주한 회사는 일본의 대형 선사 MOL이다. 하지만 이 선박들은 모두 중국의 국영 에너지업체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에 용선이 이뤄질 예정이다. 사실상 중국 정부의 자체 발주다. 반면 한국 업체들의 발주사는 그리스 선주들로 추정된다.
가격 차이도 상당하다. 후동중화이 수주한 LNG선 6척의 평균가는 척당 1억9600만달러에 그쳤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선박의 부가 기능이나 인도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약 2억1200만달러에 달했다. 이 선종의 클락슨 평균가가 2억1000만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만이 제값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1500만달러의 차이는 가격 경쟁력에 있어선 중국 업체들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반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후동중화가 건조한 LNG선 글래드스톤호가 2018년 해상에서 엔진 고장으로 멈춰 결국 폐선된 사건은 지금의 한국 조선업체들의 독주 체제를 만든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후동중화는 중국 국영업체들의 발주에 의존하긴 했지만 그 덕에 수주를 이어가며 건조 경험을 쌓았다. 그 결과 한국에 비해 척당 20%가량 싼 탱커, 벌크선만큼은 아니지만 7% 수준의 낮은 가격으로 LNG선을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쌓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 같았으면 후동중화는 이미 망했을 것”이라며 “실패 경험을 통해 완성도를 상당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업계는 LNG등 원자재가 전략무기화하면서 선박 발주의 배경에 정부의 개입도가 높아지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작년 말부터 본격화된 총 발주 규모 100척이 넘는 카타르 LNG선 프로젝트의 첫 발주분 역시 후동중화가 가져갔다. 그 배경엔 카타르로부터 대량의 LNG를 수입하는 중국의 입김이 있었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