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20만원' 비대면 사원모집에 솔깃…수상한 알바의 정체 [최예린의 사기꾼 피하기]

입력 2022-01-22 18:23
수정 2022-01-22 22:35

“신입사원 채용공고! 정부의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으로 비대면 사원 모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당 평균 20만원, 합법적인 업무라면 괜찮으시죠? 상담을 원하시면 1번을 눌러주세요.”

취업준비생 서모씨(25)는 최근 이같은 내용의 자동응답전화(ARS)를 받았습니다. 서씨는 일당이 20만원이라는 말에 이끌려 전화를 끊지 않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정부의 거리두기 정책 때문에 비대면 업무를 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말도 그럴듯하게 들렸습니다. 면접에 응한 서씨는 ‘채권업체 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채권 회수 업무를 지시받았습니다.

이 구인 광고의 진짜 목적은 보이스피싱 일당의 현금 수거책 모집이었습니다. 이수정 법무법인 리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거책 모집”이라며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고 2~3일만 관여해도 사기죄, 사문서위조죄 등으로 징역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채권 추심'이라더니 보이스피싱 수거책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고액 아르바이트(알바)’로 위장해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돈을 수거하도록 하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런 구인공고는 일당 15만~20만원의 높은 보수를 미끼로 내겁니다. 대면 면접 없이 전화나 카카오톡 메신저로만 채용을 진행합니다. “높은 보수를 주면서도 왜 대면 면접을 보지 않냐”고 물으면 업체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 때문에 비대면 방식으로 사원을 모집한다”는 이유를 댑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자신을 ‘채권업체 팀장’이라고 소개합니다. 표면적으로 지시하는 업무는 채권 회수입니다. 정해진 장소에 나가 채권을 상환해야 하는 채무자를 만나 자신을 시중 은행의 직원이라고 소개하도록 지시합니다. 채무자에게 보여줄 가짜 은행 서류를 주는 업체도 있습니다. 알바생은 채무자에게 1500만~2000만원가량의 현금을 받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통해 이 돈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이체하는 수순입니다.

그러나 업체가 채무자로 칭한 사람이 실제로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입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은행을 사칭해 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데요.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면 낮은 금리의 대출로 바꿔주겠다”고 속입니다. 피해자는 대출금을 갚는다고 생각해 알바생에게 현금을 건네고, 알바생은 이를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이때 알바생은 자신도 모르는 새 보이스피싱 일당의 ‘현금 수거책’으로 일하게 됩니다. 설령 보이스피싱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속아서 업무를 수행했더라도 법적으로는 보이스피싱 일당으로 여겨집니다. 단 한번만 이 작업을 수행해도 사기, 사문서위조 행사로 처벌받을 수 있는 겁니다.○쓰고 버리는 일회용 수거책 ‘무한대’로 조달 이렇게 알바생으로 일했다가 징역형을 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서울동부지법 형사6단독 손정연 판사는 구인글을 보고 연락해 보이스피싱 수금책으로 한 달간 일한 A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보이스피싱인 줄은 몰랐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일만 수행하고도 일당 20만원의 고액을 받는 것은 이례적임을 피고인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법원의 판단 이유였습니다. 법원은 A씨에게 피해액 1억370만원을 배상하라는 명령도 내렸습니다. A씨에게 지시를 내린 보이스피싱 총책은 검거되지 않았지만, 수거책으로 일한 A씨는 총책과 공범으로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A씨와 같은 수거책은 금세 잡히고, 또다른 수거책으로 교체된다는 점입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무한대’로 일회용 수거책을 조달해 쓰고 버리는 셈입니다.

이수정 변호사는 “보이스피싱임을 알고 이 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수거 과정에서 자신의 실명, 휴대폰 번호, 신용카드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쉽게 검거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짧으면 2~3일, 길어야 한 두 달 안에 잡힌다는 얘기죠.

이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총책은 ‘일회용 수거책’이 잡히면 다른 사람을 또 구해서 쓰면 그만”이라며 “이런 수상한 알바는 처음부터 응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