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세계경제포럼 개막에 맞춰 자칭 ‘애국적인 백만장자’라는 미국과 유럽의 부자 102명이 “우리에게 세금을 더 물리라”고 외쳤다. 각국 정부가 자신들에게 부유세를 매겨달라고 공개 요구한 것이다. 잊혀져 가던 ‘버핏세(Buffett Rule)’를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워런 버핏 미 벅셔해서웨이 회장은 2011년 자신을 포함한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을 것을 미국 정부에 촉구했다. 당시는 금융위기 충격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는데, 이번엔 코로나 충격 극복을 위해 부자들이 ‘천사’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때마침 미국에선 빅테크 거부(巨富)들이 중산층보다 세금을 덜 낸다(세율 기준)는 비판론이 일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최근 5년간 110조원의 자산을 불렸음에도 같은 기간 연방소득세는 1조원 남짓밖에 안 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세율로 따지면 0.9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본이득이 실현되기 전에는 과세하지 않고, 자본이득세율도 일반 소득세율에 비해 낮게 우대해주는 미국의 조세체계 특성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그런 설명 없이 ‘탐욕스런 거부’들로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부(富)에 대한 애착에서 부자들과 일반인이 얼마나 다를까 싶다. 먼저 나서서 세금 많이 내겠다고 할 부자들이 기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작년에 개인소득세가 없는 텍사스로 이사한 것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2012년께 프랑스 정부의 부유세에 반발한 배우 알랭 들롱과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 회장 등은 국적을 아예 바꿨을 정도다.
그런데도 ‘제2, 제3의 버핏’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이를 두고 ‘절세(節稅)의 대가’이기도 한 버핏의 다른 면모를 잘 봐야 한다는 지적이 눈길을 끈다. 버핏은 여러 자선재단에 기부하며 상속·증여세를 회피하고, 기부주식의 의결권을 유지하는 등 절세 노하우가 몸에 뱄다는 얘기다. 이미 세금 부담을 회피할 수단과 통로를 확보해 ‘기부천사’ 얼굴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에 한국 부자들의 세금 부담은 가히 세계적이다. 소득상위 10%가 내는 세금이 통합소득(근로소득+종합소득 등) 세수의 78.5%(2018년 기준)를 차지한다. 비슷한 시기 미국(70.6%), 영국(59.8%), 캐나다(53.8%)보다 높다. 한국 부자들은 선진국 부자들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비판도 어찌 보면 편견이 아닐까.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