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검토해볼 것”이라며 지난 4년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핵실험 모라토리엄(잠정 유예) 폐기를 시사했다. 자체적으로 대북 제재를 결정한 미국에 대항해 ‘핵실험 카드’를 꺼내들며 다시 ‘벼랑끝 전술’에 나설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이 다음달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전에 추가적인 초고강도 무력도발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북한 노동신문은 2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제8기 6차 정치국 회의를 열고 “싱가포르 조·미(미·북) 수뇌회담(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조선반도 정세 완화의 대국면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인 성의 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은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4월 20일 핵실험과 ICBM 발사 중단을 선언한 뒤 4년여간 유지해온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깰 것을 시사한 것이다. 이어 “국가의 존엄과 국권, 국익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의 물리적 힘을 더 믿음직하고 확실하게 다지는 실제적인 행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결론하였다”며 무력시위 강도를 높일 뜻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날 나왔다.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한국시간으로 21일 북한의 연이은 무력도발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 소집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위험계선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자신들이 요구해온 제재 완화는커녕 새로운 대북 제재에 나선 데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ICBM 발사나 핵실험을 재개할 경우 미국 유권자들도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미 공화당은 모라토리엄 철회를 민주당의 큰 실책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에는 큰 악재”라고 말했다.
올 들어서 진행한 네 차례 무력도발을 단거리 탄도미사일 중심으로 해온 북한이 무력도발 수위를 핵실험과 ICBM 발사 등 ‘레드라인’까지 끌어올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다음달 베이징 올림픽과 오는 3월 한국 대선을 앞두고 한반도 인근으로 시선이 집중됐을 때 전방위적인 압박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분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가까운 기간 내에 하겠다고 한 군사정찰위성 발사나 핵잠수함 및 중장거리 SLBM 발사, ICBM 발사 등 수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