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삼성전자와 TSMC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수십조원씩 투자를 예고한 가운데 TSMC는 유례없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았고, 삼성전자는 미국 제2 반도체 공장 건립을 위한 행정 절차를 본격화했다. 특히 올해는 양사가 3나노 초미세 공정 양산을 시작하는 첫 해여서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TSMC 역대 최대 투자…웨이저자 CEO '자신감'19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보다 3분의 1 이상 늘릴 계획"이라며 "올해 400억~440억달러(한화 약 47조5000억~52조3000억원) 규모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TSMC가 언급한 투자 금액은 인텔이 밝힌 올해 투자 계획을 무려 40% 이상 웃도는 규모다. TSMC는 또 향후 수년간 연 매출 증가 예상치를 종전 10~15%에서 15~20%로 올리고 매출총이익 장기 목표치도 50% 이상에서 53%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웨이저자 TSMC 최고경영자(CEO)는 "회사가 구조적 고성장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며 "올해 공급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겠지만 수요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가격이 조정을 받더라도 파운드리 선도 기업으로서의 위상과 다년간 이어질 구조적 수요 증가 예상을 고려하면 TSMC가 받을 영향은 크지 않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TSMC의 공격적 투자로 인해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 경쟁업체들이 TSMC를 따라잡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봤다. 딜런 파텔 세미애널리시스 수석 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TSMC의 설비 투자 규모가 삼성전자와 다시 파운드리에 뛰어든 인텔의 야심찬 계획을 어렵게 할 것이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TSMC가 계획한 투자 규모를 따라잡는 데 애를 먹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삼성 공장부지 토지 병합 요청에 美테일러시 "OK"삼성전자는 TSMC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 의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신공장의 부지를 병합하고 시 경계에 이를 포함하도록 하는 조례를 승인했다. 해당 조례에는 윌리엄슨 카운티 일부 도로에 위치한 약 1268.23에이커(약 155만평) 규모 토지 필지 병합과 토지 병합시 구역 변경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테일러시 당국은 시 구역에 포함되지 않는 토지의 일부를 포함시켜 달라는 삼성전자의 요청을 받고 이 같은 내용을 통과시켰다고 전했다. 톰 얀티스 도시 개발 서비스 이사는 "이번 조례 통과는 테일러시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새로 건설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행정 당국이 특정 외국 기업 편의를 위해 토지 구역 변경 등 행정 절차를 승인해주는 것은 이례적이다.
테일러 신규 라인은 올 상반기 착공해 2024년 하반기 가동될 예정으로, 건설·설비 등 예상 투자 규모가 170억달러(약 20조2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미국 투자 중 역대 최대 규모로, 이 공장에서만 785개의 간접 일자리와 1800개의 직접 고용 등 2585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신규 라인에는 첨단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될 예정이다. 5세대 이동통신(5G), 고성능 컴퓨팅(HPC),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시스템 반도체가 생산된다. 삼성전자는 퀄컴·엔비디아·테슬라·구글 등 AI, 5G, 메타버스 관련 반도체 분야를 선도하는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고객에게 첨단 미세 공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입장이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올해 40조원 이상을 반도체에 투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3분기 반도체에 29조9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장 올해에만 경기 평택캠퍼스의 세 번째 반도체 생산라인 'P3' 공장 완공과 네 번째 생산라인 'P4' 착공, 미국 파운드리 2공장 착공 등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삼성전자는 이곳에서 대당 2000억원이 넘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사용한 최첨단 공정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3나노 등 초미세 공정이 '진짜 승부처'업계에서는 TSMC와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 및 공장 착공 속도전 배경에 3나노 등 초미세 공정 양산 시스템 구축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TSMC는 올해 투자액 가운데 70~80%를 2·3·5·7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개발에 투입할 예정이다. 현재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작년 3분기 기준)은 TSMC가 53.1%로 압도적 1위이며 삼성전자가 17.1%로 2위다.
전체 점유율 면에서는 TSMC가 삼성전자를 월등히 앞서지만 5나노 이하 공정에서는 두 회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5나노, 7나노 등의 수치는 반도체 칩의 회로 선폭 규격을 가리키는 것으로, 회로의 선폭을 가늘게 만들수록 더 많은 소자를 집적할 수 있어 성능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현재 전세계에서 5나노 공정이 가능한 곳은 삼성전자와 TSMC 뿐이다.
TSMC와 삼성전자는 현재 3나노대에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신규 공장들을 통해 TSMC보다 앞선 초미세 공정을 선보여 투자 규모 격차를 극복하겠다는 방침.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 차세대 GAA(Gate-All-Around) 기반 3나노 양산을 시작한다. GAA는 기존 핀펫(FinFET) 기술보다 칩 면적은 줄이고 소비 전력은 감소시키면서 성능은 높인 신기술이다.
TSMC도 최근 설명회에서 올 하반기 3나노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측의 계획대로라면 삼성전자가 TSMC보다 한 발 앞서 3나노 양산에 들어가는 셈이다.
TSMC는 2나노 공정 도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현지 언론에 따르면 TSMC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2나노 공정 반도체를 양산하기 위해 신규 공장 용지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에서 2025년에 2나노 제품을 양산할 계획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TSMC가 첨단 공정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삼성전자를 의식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3나노부터가 진짜 경쟁이다. 종합 반도체를 하는 삼성전자가 올해는 투자 비중을 파운드리로 확 늘려 한 우물만 판 TSMC와 투자 금액 균형을 맞추거나 우위에 있어야 한다"며 "삼성이 반도체 전체 매출 좋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안정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수요가 한쪽으로 확 치우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