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뒷걸음질 중인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는 일본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일본은행은 일본의 올 성장률을 3.8%로 전망했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한국 성장률(3.0%)보다 0.8%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지난해 4.0% 성장에 그치며 미국(5.6%)에 뒤진 데 이어 올해는 저성장의 대명사인 일본에도 밀릴 것이라니 암울하기 짝이 없다.
성장률에서 일본에 뒤진다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24년 만의 일이 된다. 지난 50여 년을 돌아봐도 1·2차 오일쇼크 때인 1972년과 1980년을 포함해 세 차례에 불과하다. 모두 경제위기 국면에서 나타난 일시적 현상이기도 했다. ‘잃어버린 20년’의 긴 터널을 지나온 일본보다 못한 경제 성적표는 식다 못 해 꺼져가는 우리 경제의 분명한 현주소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일본보다 1인당 GDP(구매력 평가기준)가 높아지고, 근로자 평균 연봉도 높다는 식의 우쭐해지는 소식을 접해왔다. 일본의 ‘G7’ 자리를 조만간 대체할 것이란 예상까지 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성장률 역전’ 소식을 접하니 뒤통수를 맞은 듯 당혹감이 느껴진다.
심각한 것은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OECD는 한국의 2030~2060년 평균 성장률을 0%대(0.8%)로 추정했다. 38개 회원국 중 꼴찌를 기록할 것이란 냉혹한 진단이다. 반면 오랜 경쟁자인 대만은 10여 년의 체질개선 노력 끝에 고성장을 지속하며 1인당 GDP에서 올해 한국을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다. ‘자고 나면 생긴다’는 세계 최강의 덩어리 규제, 노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아예 뒤집어버린 친노조 편향, 신산업을 가로막는 낡은 관료집단과 기득권 장벽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10여 년 전 일본 기업은 높은 법인세율, 엔화 강세, 전력 부족, FTA 지연, 탄소배출 규제, 노동 규제라는 6중고에 시달렸다. 하지만 “2012년 아베 내각 출범 뒤 6중고가 해결됐다”(게이단렌 회장)는 말이 2018년 무렵부터 나오더니 급기야 한·일 성장률 역전을 맞게 됐다. 일본은 기축통화 대접을 받는 엔화가 있어서 양적긴축 시대에 정책수단이 비교적 다양하다. 반면 한국은 재정·통화정책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는 기업들이 악전고투하며 경제를 지탱해왔지만 일본처럼 축적된 고도기술이 부족한 터라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면 ‘한국판 잃어버린 20년’을 피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