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펌업계에 ‘40대 바람’이 불고 있다. 50~60대가 주축인 대표 변호사에 40대가 연달아 임명되는가 하면 고위 경영진에 합류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산업구조 급변에 맞춘 법률 자문을 제공하기 위해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경영 활동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40대 대표 시대’ 활짝로펌 고위 경영진은 통상 운영위원→부문별 대표→총괄대표로 구성된다. 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최근 이정란 파트너 변호사(41·사법연수원 37기)를 대표변호사로 선임했다. 10위권 대형 로펌 중 첫 40대 여성 대표변호사다. 이 로펌은 다음달 대표변호사 등기를 위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 변호사는 1981년생으로 2005년 4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법무법인 바른, 화우를 거쳐 2019년 대륙아주에 합류했다. 공정거래와 행정·중대재해·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 전문가로 꼽힌다.
다른 주요 로펌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른은 40대인 김도형(46·34기)·강태훈(47·36기) 변호사를 지난해 9월 새롭게 운영위원에 합류시켰다.
이와 함께 당시 50세였던 이영희 변호사(51·29기)를 대표로 선출했다. 국내 대형 로펌 최초의 여성 대표다. 이 변호사는 인사노무, 건설, 가사 사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40대였던 2018년부터 바른의 경영 운영위원을 맡아왔다.
세종도 지난해 초 김대식(50·28기)·이창훈(43·33기) 변호사를 운영위원으로 선출했다. 10위권 밖 로펌 가운데는 케이씨엘이 작년 초 이석현 변호사(48·32기)를 5명의 경영위원 중 한 명으로 뽑았다. ○격변하는 산업 트렌드에 대응법조계에선 로펌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진 구성에 변화를 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 플랫폼, 인공지능(AI),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혁신산업이 성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다양한 법률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에 따라 로펌들은 전담조직까지 구성하면서 혁신산업 관련 법률 자문·소송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로펌 경영진도 해당 업무를 주도하는 30~40대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의 수익을 분배받는 파트너 이상 고위 변호사들은 신규 투자에 따른 비용 증가가 그해 수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에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며 “경영진 구성을 바꿔 젊은 변호사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젊은 임원을 배출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도 로펌 경영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시가총액 1~50위 상장기업의 지난해 3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1980년대생 임원은 50명으로 2020년 3분기(31명)보다 60% 증가했다.
유니콘기업(기업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을 포함한 주요 벤처기업에선 30대 임원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한층 젊어진 기업 임원들이 원하는 법률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이들과 나이가 비슷한 변호사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전문 분야가 공정거래, 인사·노무 등인 변호사들이 로펌 고위 경영진에 속속 합류하는 흐름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공정거래법·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대폭 강화된 여파가 로펌업계 경영진 인사에도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로펌업계 관계자는 “기업 등 민간 영역에 대한 정부의 무리한 행정처분으로 행정소송이 급증하면서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들의 몸값이 높아지는 것도 최근 로펌 인사의 한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