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反시장' 부동산 정책의 종말

입력 2022-01-19 16:42
수정 2022-01-20 00:18
왕이 인간의 역사가 궁금하다고 하자 현자가 책 500권을 가져왔다. 왕이 읽기에는 너무 많았다. 현자는 20년 동안 책을 50권으로 압축했다. 하지만 바쁜 왕은 더 줄이라고 했다. 다시 20년이 흘러 책 한 권이 완성됐지만, 늙은 왕은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현자는 인생을 단 한 줄로 요약했다. ‘사람은 태어나서, 고생하다가, 죽는다. 인생에는 아무런 뜻이 없었다.’

영국 작가인 서머싯 몸의 1915년 장편소설 《인간의 굴레》에 나오는 이야기다. 막바지에 이른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간략히 요약해볼 수 있을까.

출범 초기 이 정부는 시장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고 단언했다. 이후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다. 규제는 세제, 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 2017년 ‘8·2대책’부터 ‘규제 끝판왕’으로 불린 2018년 ‘9·13대책’, 고가 주택 담보대출을 금지한 2019년 ‘12·16대책’, 2020년 새 임대차법 등을 발표했다. 5년간 규제 쏟아낸 文정부정부는 뒤늦게 수요 억제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3기 신도시 등 공급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공공개발을 내세운 ‘2·4대책’ 등을 내놓았다.

그럼 시장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규제가 나오면 잠시 주춤했지만 곧 여지없이 반등했다. 강남을 잡으면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이 뛰고, 마용성을 잡으면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이 움직였다. 6억원 초과 주택의 대출을 규제하니 6억원 아래 가격이 뛰었다. 두더지 잡기 같은 ‘풍선효과’가 지겹게 반복됐다. 내성이 생겨서인지 언제부터인가는 대책에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이번 정부 들어 4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두 배가량 올랐다.

지난해 말부터 집값 상승폭이 줄고 하락 지역이 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안정세라고는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정부 규제가 드디어 빛을 발해 집값이 내리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 금리 인상 등 세계적인 긴축이 자산 가격의 버블을 줄이고 있다는 해석이 대세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이번 정부가 수요와 공급 예측을 잘 못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규제로 재건축 및 재개발을 막은 게 잘못이었다는 얘기다. 집값 급등으로 세금만 폭증집값이 오르자 세금이 문제가 됐다. 보유세를 무겁게 하면 거래세는 가볍게 해 시장에 매물이 나오게 하는 게 정부의 원래 기조였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자 세금까지 ‘집값 잡기’에 동원했다. 보유세와 거래세를 모두 강화하는 ‘세금폭탄’ 정책으로 바뀌었다. 현실화시키겠다고 과세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까지 확 끌어올렸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올해까지 2년 연속 10%대의 상승률을 보였다.

그 결과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으니 보유세를 작년만큼만 내도록 해줄게”라는 속이 뻔히 보이는 선심성 공약도 감사하게 여길 만큼 세금 부담이 커졌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 한 채 갖고 있을 뿐인데, 보유세를 내기 위해 월급받아 적금을 부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대선 후보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경쟁적으로 부동산 세금 축소를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국민의 분노가 커졌다.

이제 이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한 줄로 정리해보자. ‘반시장적인 규제를 쏟아내자 집값은 급등했고, 세금은 폭증했다. 불행해지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