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주춤했던 국내 은행의 글로벌 시계가 다시 빨라지고 있다. 불과 2년 전 베트남 최대 은행인 베트남투자개발은행(BIDV)에 1조원을 베팅한 하나은행은 최근 70%에 이르는 투자 수익률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베트남에서 외국계 1위 은행 자리를 다진 신한은행도 현지화한 모바일뱅킹 앱을 앞세워 소비자 기반을 빠르게 넓히고 있고, 우리은행은 코로나19 와중에도 1년 새 해외 순익을 60% 넘게 늘렸다.
은행들에 저성장·고령화와 가계대출 규제, 빅테크와의 경쟁까지 맞물린 국내 시장은 성장의 한계가 뚜렷하다. 은행들이 올해 일제히 ‘리딩 글로벌 금융사’를 목표로 내건 이유다. 이들은 베트남·인도네시아·캄보디아 등 고속 성장이 기대되는 동남아시아 국가는 물론 호주·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 영업에도 재차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2대 주주로 있는 BIDV의 실적 개선이 빠르게 가시화하고 있다. 앞서 하나은행은 2019년 11월 BIDV의 지분 15%를 1조148억원에 취득하는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국내 은행의 해외 투자 사상 최대 규모였다.
투자 직후 불거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성과는 고무적이다. 기업 대출에 치우쳤던 BIDV는 하나은행의 소비자금융 노하우를 전수받아 개인 대출 자산 비중을 3년 새 32%에서 38%까지 늘렸고, 수수료 수익도 같은 기간 두 배 넘게 확대됐다. 그 결과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 대비 40% 넘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하나은행이 지난해 9월 말까지 BIDV와 관련해 거둔 이익은 1100억원(지분법 이익)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하나은행의 전체 해외법인 이익(1032억원)을 넘어선 규모다. BIDV 주가 상승에 따른 이익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주당 2만6747동(약 1337원·배당락 고려한 주가)에 사들인 BIDV 주식은 지난 13일 기준 4만4000동(약 2306원)까지 뛴 상태다. 주가 기준 투자 수익률만 70%에 이른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지난달 주식배당으로 1억5547만 주를 더 취득해 주가 상승에 따른 추가 이익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해외 금융사 인수나 법인 설립 같은 직접 진출 대신 지분 투자를 통한 해외 진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했다.
신한은행도 베트남에서 디지털 뱅킹을 무기로 현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순이익이 889억원, 자산은 7조7746억원으로 현지 외국계 은행 가운데 1위다. 특히 2018년부터 두 차례 업그레이드해 출시한 앱 ‘베트남 쏠’이 디지털 금융 수요가 큰 현지 소비자를 대거 끌어들였다. 베트남 쏠 가입자는 지난해 말 64만8799명으로, 3년 만에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은행들은 베트남뿐 아니라 인도네시아·캄보디아·미국·홍콩 등 시장을 불문하고 영업 확장에 힘쓰고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말 해외법인을 통해 벌어들인 순익이 1310억원으로, 1년 새 65% 늘었다. 이 가운데 동남아 국가의 이익 비중은 83.5%에서 62.6%로 오히려 줄었다. 미국·홍콩·러시아·브라질 등지에서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룬 덕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동남아 국가에서 영업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미국·유럽 시장에서도 투자은행(IB) 딜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