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잡앤조이=진태인 집토스 전략교육팀장] “외국인 집을 구해주라고요?”
금발에 파란 눈동자의 남자가 방을 구하러 왔다. 나는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영어 할 줄 아는 직원들은 많았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모두가 물러섰을 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더듬더듬, 손짓 발짓, 난해한 단어들의 남발로 뒤덮인 1시간이 끝났다. 그는 미소를 띠며 사무실 밖을 나섰다. 뒤집혀 있는 알파벳으로 머리가 가득 찬 채,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준비를 좀 해야겠다’
부동산 스타트업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다 보면 난처해하는 손님들이 있다. 그중 한 가지를 꼽아본다면, 단연코 외국인 고객이다. 외국인 고객은 의사소통과 계약 설명이 까다로워 임대인들이 꺼리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밤낮 할 것 없이 별의별 질문들을 받는다. 공유기, 옷, 생필품, 심지어 침대까지 함께 사러 간 적이 있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외국인 고객의 유입은 곧 한국 주거에 대한 수요다. 하지만 공급하는 곳은 제한적이다. 뉴스에는 매년 수천 곳의 부동산 사무소가 개업했다고 말하지만, 외국인 고객이 찾을 만한 부동산은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알파벳으로 가득 차 있던 내 머리는 이내 느낌표로 바뀌었다.
쉬운 방법부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에 많이 활용되는 단어와 문장을 준비했다. 보증금(deposit), 전기(electricity), 수도(water), 가스난방(gas), 월세(monthly rent fee). 쉬운 단어들로도 구성할 수 있다. 예전에 취업 준비할 때 스피킹 시험 준비했던 것이 갑자기 여기서 빛을 발했던 순간이었다. 정해진 문장을 ‘발사’하고 가끔 고객의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 내가 이해한 대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맞나요?”라고 되물으면서 소통이 이어졌다.
놀랍게도 영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나는 당신편입니다’ 라는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사람은 다 똑같다고 했던가, 결국 의사소통은 도구의 문제였고 이 사람이 내가 처한 어려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도와줄 의사가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했다. 구한 방이 방음이 잘 안 될 때,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방을 옮겨 줄 수 있는지도 확인하느라 많은 시간을 쏟았다.
계약 당시에 신분증이 아직 발급 안 되었을 때 대사관과 출입국사무소에 문의해서 발급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당장 현금이 없을 때를 대비해 출금하는 방법이나 하물며 인터넷 공유기 설정하는 법, 겨울철 보일러 작동법을 안내했다. 내가 해외여행을 갔을 때를 떠올리며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역지사지는 국경을 초월하는 신뢰로 돌아왔다. 정말 언어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을 느꼈다.
남들이 꺼리던 일에 집중했더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 이후 몇 해간 외국인 고객은 모두 내가 독차지했다. 외국인 고객은 입국 전에 영상으로 사전에 방을 고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지인 계약보다 진행속도가 빠르다. 동영상 보내주고 계약서 이메일 보내고 페이팔 결제 송장만 보내면 중개가 성사된다. 이런 시장을 왜 다들 꺼렸을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즘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렵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들 이야기한다. 발상을 바꾸면 수요는 넘치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막내였던 내가 사람을 채용하는 입장으로 바뀌다 보니 뽑을 사람이 없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꼰대’가 되었나 보다. (웃음) 꼰대라 불러도 좋다. 2015년, 아무것도 모르고 취업이라는 벽에 박치기하던 내가 떠올랐다.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말해본다. 취업에 고민을 가진 청년이라면 젊은 꼰대의 한 마디에 잠시나마 눈길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가 확실하고 안정된 일만 원한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안정된 일자리의 급여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이유는 그 일자리에 수요에 대한 ‘공급’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위험한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수요는 넘치고 공급이 적은 분야를 찾기를 바란다.
매년 수천 개의 부동산 중개사무소가 생긴다. 그리고 그 수 만큼 사라진다. 사람들은 동네마다 부동산이 있고, 이미 포화된 레드오션 시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부동산은 주거용 부동산, 비주거용 부동산으로 나뉜다. 주거용 부동산은 다시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다가구 주택, 다중 주택(원투룸), 도시형생활주택 등으로 세분화된다. 비주거용 부동산은 상가, 사무실, 아파트형공장, 토지, 잡종지, 주차장, 밭, 논 셀 수 없이 나누어진다.
레드오션을 블루오션으로 만드는 방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수요가 곧 시장이다. 사회가 고도화되고, 사람들의 수요가 복잡해질수록 틈새시장은 수 없이 많이 생긴다. 그리고 기회가 생긴다. 사람들의 불편함과 그 수요를 잡는 사람이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이다. 바로 그 사람이 레드오션을 한순간에 블루오션으로 만드는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게임체인저’다.
진태인 씨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대기업 유통 바이어(MD)로 사회 첫 발을 내 딛었다. 부동산의 무한한 부가가치를 깨닫고 부동산 스타트업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수 년간의 영업직 경험을 바탕으로 집토스에서 사내 교육기관을 운영하며, 미래 사회가 필요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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