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만 해도 미국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단타족을 ‘덤 머니(dumb money)’라고 부르며 조롱했다. 직역하면 ‘귀가 먼 돈’이란 뜻이다. 전문성 없이 이것저것 따져보지 않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개인투자자를 얕잡아 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월가의 전문 투자자들은 개인투자자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인이 더는 무시할 수 없는 ‘큰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임스톱 AMC엔터테인먼트 등 ‘밈 주식’(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며 개인투자자가 몰리는 주식)이 지난해 돌풍을 일으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덤 머니의 반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월가의 헤지펀드 85%와 자산운용사 42%가 개인투자자가 활동하는 ‘종토방’(종목토론방)을 추적하고 있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투자은행(IB) JP모간은 지난해 9월 개인투자자의 매매 동향을 알려주는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했다. 개인이 어떤 종목을 사고팔 가능성이 있으며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섹터와 종목이 활발히 논의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퀀트 매니저, 고액 자산가 등 50여 명의 고객이 이 플랫폼을 테스트하고 있다. JP모간 증권 트레이더들은 이를 위험 관리에 사용하고 있다. 크리스 버테 JP모간 글로벌 현금 주식 거래 공동책임자는 “전문 투자자라면 개인투자자의 동향을 무시할 수 없다”며 “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투자자 계층이며 투자 테마도 올바르게 잡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개인투자자의 영향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격히 커졌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급증했다. JMP증권에 따르면 2020년과 지난해 미국에서 각각 1000만 명, 1500만 명 이상의 개인투자자가 새 증권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업체 반다리서치는 지난해 미국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는 2920억달러어치의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순매수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2019년의 일곱 배가 넘는 규모다. 개인은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매수 활동을 이어갈 태세다. 강심장의 승부사들애널리스트들은 올해 미국 증시의 앞날이 험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변동성이 장기화하면 개인들은 버티지 못하고 결국 증시에서 물밀듯 빠져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닷컴 거품이 터졌던 1990년대 말과 지금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인투자자는 ‘강심장 승부사’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반다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증시에서 개인이 가장 많은 주식을 매수한 날은 S&P500지수가 1.3% 이상 하락한 날이었다. 변동성이 클 때 개인투자자가 유동성을 공급해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 논문도 여럿 발표됐다.
개인들은 전문 투자자의 전략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전문 투자자 사이에서 공매도 열기가 시들해졌다는 게 대표적이다. 게임스톱 사태 당시처럼 개인투자자가 똘똘 뭉쳐 매수세를 과시하며 공매도 세력에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단타족의 활동을 추적하는 데이터 분석회사 S3파트너스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으로 미국 증시에서 유동주식 대비 대차잔액(short interest: 남아있는 공매도 수량) 비율이 40% 이상인 종목은 7개에 불과했다. 2020년 1월과 지난해 1월에는 각각 40개, 19개였다. 이호르 두사니우스키 S3파트너스 예측 분석 책임자는 “모든 헤지펀드의 마음 한쪽에는 밈 주식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며 “버스에 치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