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기업의 숙련공이 택배와 배달 등으로 빠져나가고 청년들이 취업을 꺼린다는 점에서 중소 제조업은 더 큰 구조적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형 주물 단조 도금 용접 등 제조업 근간인 뿌리기업의 인력난이 장기화되면서 이들이 주로 납품하는 자동차와 조선산업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뿌리기업의 핵심 기술인력인 숙련공들은 지난해 주 52시간 근로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야근·잔업수당이 사라지자 택배·배달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 근로자 인력 수급마저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소 제조업의 인력난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물류 쪽에서 월 400만원까지 벌 수 있다는 소식에 아예 이직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중소 조선업 근로자의 82.4%는 주 52시간제 도입 후 임금이 감소했다. 영세 뿌리기업의 경우 월급여가 100만원가량 줄어 생계가 어려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역시 주 52시간제 시행 후 플랫폼 시장으로의 인력 이동이 많아져 중소기업의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월 404만 명에서 10월 425만 명으로 20만 명 넘게 증가했다. 노민선 중기연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서 택배·배달 등 자영업으로의 이동이 많아진 증거”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플랫폼 종사자는 약 220만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8.4%수준이다. 추 본부장은 “최근엔 물류시장으로 빠져나간 인력 공백에 따른 과중한 노동부담으로 추가 이탈 인력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의 한 생활용품 제조업체 대표는 “주식과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면서 제조업에서 땀 흘려 일하려 하지 않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상당수가 ‘주식 단타 매매 몇 번이면 일당이 나오는데 굳이 땀 흘려 제조업에서 일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태희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중소 제조업의 이직률은 13.5%로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