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골라잡는 '면역세포'…mRNA기술 더해 심장병 치료

입력 2022-01-14 17:19
수정 2022-01-14 23:42
우리 몸의 ‘면역 특수부대’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악성 종양을 직접 제거한다. 다른 면역 세포를 규합하는 사령관 역할도 한다. 타깃을 죽인 뒤엔 ‘기억T세포’로 분화한다. 추후 동일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 기억을 토대로 처음 전투 때보다 훨씬 더 신속하게 상대를 제압한다. 백신 성능을 평가할 때 기억T세포 생성 여부와 수준이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는 이유다.

바이러스도 호락호락하진 않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끊임없는 변이를 일으키며 T세포에 대항한다. 변이가 심해지면 T세포는 결국 무기력해지고, 수와 강도가 감소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인위적으로 T세포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방법을 개발했다. 혈액암 치료에 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다. 타깃으로 T세포를 정확히 안내하는 ‘정밀 유도시스템’을 장착해 살상력을 높인 T세포다.

이를 체내에 주입하려면 환자 몸에서 T세포를 분리해 유전자를 조작한 뒤 배양과 증식을 거쳐야 한다. 체내에 들어가면 수개월에서 최대 수년간 잠복한다. 평소엔 얌전하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언제든 전투에 나선다. 다만 CAR-T는 암에 특화돼 있어 심장병 등 다른 난치성 질환 치료엔 적용하기 어려웠다.

심장 조직에 손상이나 염증이 생기면 ‘섬유모세포’가 생긴다. 이 세포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적이다. 상처 치유를 돕지만, 과도해지면 섬유질을 생성해 심장에 부담을 주고 심기능을 떨어뜨린다. 이런 섬유증은 심부전의 원인이 된다. 신부전, 간경화 등 심각한 질환은 섬유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조너선 A 엡스타인 교수 연구팀은 CAR-T와 메신저 리보핵산(mRNA) 기술을 융합해 심장 섬유증을 치료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논문은 세계 3대 학술지 ‘사이언스’ 최근호에 표지논문(사진)으로 실렸다.

모든 유전정보는 DNA(데옥시리보핵산)에 담겨 있다. RNA는 DNA의 유전정보를 옮겨 적은 복사본이다. DNA는 RNA를 만들기 전 단백질을 구성하는 일종의 형틀을 생성하는데, 이를 mRNA라고 한다. 화이자, 모더나 코로나19백신으로 이젠 익숙해진 용어다.

연구팀은 mRNA 코로나19 백신 메커니즘에 착안해 이번 기술을 개발했다. 먼저 ‘나쁜’ 섬유모세포만 인식하는 T세포 합성 코드를 가진 mRNA를 디자인했다. 착한 섬유모세포와 달리 나쁜 섬유모세포는 FAP(섬유소활성화단백질)를 분비하는데, 이를 인식해 T세포가 돌진하도록 설계했다.

또 거품 형태의 지질 나노입자(LNPs)로 mRNA를 감쌌다. mRNA가 깨지기 쉬운 불안정한 분자라는 것을 감안했다. 우주선이 우주비행사를 보호하면서 목표 궤도를 향해 날아간 뒤 위성을 배출하는 것처럼, mRNA가 나쁜 섬유모세포에 정확히 나아가 T세포를 방출하도록 만든 것이다. 특히 환자의 몸에서 T세포를 별도로 분리하지 않고도 CAR-T를 엔지니어링하는 획기적 기술을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렇게 개발된 mRNA 기반 CAR-T를 심부전에 걸린 생쥐의 혈관에 주입한 결과 며칠 만에 완치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mRNA 기반 CAR-T는 수개월~수년 머물던 기존 CAR-T와 달리 1주일가량만 체내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UCLA 관계자는 “면역 항암제를 다른 질환 치료제로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