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2012년 아마존, 구글, 메타(옛 페이스북), 이베이 등이 설립을 주도하며 막을 올린 실리콘밸리 로비단체인 인터넷협회(IA)가 최근 해체됐다. IA는 성명을 통해 “우리의 산업은 엄청난 성장과 변화를 겪어왔다”며 “협회 해체는 이런 진화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IA에 소속된 기업은 약 40개사였다. 넷플릭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페이팔 등 다양한 정보기술(IT) 기업이 이 협회에 포함돼 있었다. 인터넷을 둘러싼 각종 규제 등에 대해 함께 정부와 의회 등에 전방위적인 로비를 펼쳐오며 동고동락해왔다. 하지만 이 단체는 지난달 15일 해체를 밝힌 뒤 2021년 마지막 날 9년간의 역사를 마무리하며 뒤안길로 사라졌다.
실리콘밸리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던 IA가 사라진 표면적 이유는 회원사의 탈퇴와 지원 철회 때문이다. 협회는 소속 기업들의 매출을 기준으로 결정된 회비로 운영된다.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협회에 소속된 ‘큰손’ 기업들이 탈퇴와 기부금 삭감 조치를 발표하면서 조직은 와해되기 시작했다.
커져도 너무 커진 빅테크
폴리티코에 따르면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우버 등은 IA를 탈퇴했다. 구글, 애플 등도 회비를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MS가 IA에 지급하는 돈은 연간 80만~100만달러에 달했다. 폴리티코는 MS가 탈퇴를 발표한 이후 IA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보도했다.
“더 이상 일치하지 않는 이해관계”가 원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MS 관계자는 “IA가 지난해 가을 회사에 회비 인상을 요구했다”며 “우리는 IA에 소속돼 얻을 수 있는 금전적 가치가 매우 낮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빅테크(대형 IT업체)들은 사업을 확장하면서 이해관계가 상충되기 시작했다. 서로의 사업 영역이 중첩됐고, 규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던 이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메타와 구글 사이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소셜미디어 이용자가 올린 게시글, 댓글 등의 콘텐츠와 관련해 플랫폼 기업들에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조항 통신품위법 230조를 두고 다른 목소리를 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플랫폼 규모에 따라 면책 조항을 적용하도록 법안을 바꿔야 한다”며 “페이스북처럼 하루에 수십억 개의 글이 올라오는 기업에는 면책조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조항을 폐지하거나 개정하자는 의견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내부에서 구체적인 지침을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반독점 규제에서 쏙 빠진 MS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강력한 반독점 규제도 결정적이었다. IA에 소속된 빅테크 중 MS만 반독점 규제 대상에서 예외가 됐다. 2020년 6월 MS를 제외한 애플 아마존 구글 메타 등 빅테크 CEO들은 사상 최초로 하원 반독점 청문회에 출석했다.
구글 저격수로 불리는 조너선 캔터 미 법무부 반독점 국장,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등 바이든 정부의 ‘반독점 삼각편대’도 MS는 겨냥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 MS는 운영체제(OS) 윈도의 시장지배적 지위를 바탕으로 ‘끼워팔기’ 논란을 일으켜 독점 금지의 표적이 됐다. 이후 MS는 정부와 적극적 협업에 나섰고, 반독점 규제에서 비켜나갔다. 이런 MS의 행보가 다른 빅테크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지난해 6월 브래드 스미스 MS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기술회사는 규제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며 “우리는 규제에 맞서기보다 적응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MS와 각을 세운 대표적 기업은 아마존이었다. 아마존 관계자는 “앤디 재시 CEO는 규제당국이 경쟁자(MS)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것에 좌절했다”며 “아마존은 MS도 다른 기업들처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글도 정부의 MS 편향에 대해 연구 결과를 내놨다. 작년 9월 구글이 컴퓨터통신산업협회와 함께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MS는 미국 정부기관에서 사용하는 생산성 소프트웨어의 85%를 지원한다. 보고서를 작성한 팀 밴팅은 “미국 정부가 하나의 업체(MS)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중소 IT기업도 반발그동안 IA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독점 규제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IA에는 빅테크뿐만 아니라 뉴스브레이크, 디스코드 등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형 IT 기업도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정부의 반독점 규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거는 빅테크 기업과 상충된다. IA가 중소형 IT 기업들의 반발로 반독점 규제에 관해 큰 관심이 없었고 빅테크들은 이에 반발했다.
빅테크들은 반독점 규제에 인수합병(M&A)도 어려워졌다. IA가 의회에서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는 “많은 돈을 지급하는 기업인 구글과 아마존 등은 IA가 정부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자 회비 삭감을 고려했다”고 보도했다.
IA 해체는 회원 기업 간 갈등으로, 이미 예상된 문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때 IA에 소속됐던 옐프(맛집 정보업체)의 루터 로 공공정책실장은 “이 조직이 시가총액 5000억달러 이상인 기업을 쫓아냈다면 없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몇 년 전 지도부에 이런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옐프는 2019년 IA를 탈퇴했다. IA 대체할 조직 있나전문가들은 IA가 사라진 빈자리는 넷초이스와 진보회의소가 채울 수 있다고 관측한다. 다만 이들은 IA에 비해 이들 협회가 당파성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넷초이스는 공화당 성향을, 구글 전 임원에 의해 만들어진 진보회의소는 민주당과 가까운 성향을 지녔다는 것이다
빅테크들에 더 이상 ‘협회’라는 통일된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신들만의 로비를 하는 것이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빅테크의 로비금은 정유기업, 담배기업보다 많다”고 전했다.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이 미국 상원 자료를 조사한 결과에 작년 3분기까지 아마존은 1530만달러, 메타는 859만달러에 이르는 돈을 로비하는 데 썼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