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유가증권시장에서 7조원어치 가까이 팔아치운 기관투자가가 10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전환했다. 특히 지난해 말 배당락일(12월 29일)부터 줄곧 매도세를 유지하던 금융투자(증권사)는 올해 처음 매수세를 나타냈다. 연말 배당차익을 노리고 현물을 매수하면서 선물을 매도했던 기관이 연초 선물을 되사고 현물을 팔아 포지션을 청산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지수 하락 요인으로 작용했다.
증권업계에서는 1월 파생상품 만기일을 하루 앞두고 기관의 배당 관련 매물 부담이 대부분 해소된 것으로 봤다. 외국인투자자도 국내 증시에서 매수세를 이어가고 있어 수급의 분기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융투자 매물 다 나왔다”
1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은 6000억원어치 넘게 순매수했다. 기관이 ‘사자’로 돌아선 것은 지난달 29일 이후 10거래일 만이다. 전날까지 기관은 9거래일 동안 7조2484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외국인도 이날 4500억원어치 동반 순매수를 보이면서 코스피지수는 1.54% 오른 2972.48로 마감했다.
그동안 기관의 매수세를 이끈 금융투자가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매수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작년 말부터 이어져 온 기관의 배당차익거래에 따른 매도세가 일단락된 것으로 분석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작년 12월 이후 배당락일 전까지 금융투자가 순매수한 금액은 약 5조5000억원이고, 이는 배당차익거래 물량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배당락일 이후부터 이달 11일까지 금융투자의 순매도액은 약 6조원에 달해 12월 이후 유입된 물량이 대부분 매물로 출회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의 매도세가 진정되면서 옵션 만기일인 13일 이후 국내 증시 수급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인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부분 배당락 후 10일이 지난 뒤에는 금융투자의 매도세가 진정되면서 수급 부담도 줄어든다”며 “특히 이번처럼 배당락 이후 금융투자 매도세가 강했다면 오히려 매수세 유입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금융투자의 경우 개별 주식 선물을 이용해 배당차익거래를 한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기금도 순매수 전환연기금과 자산운용사도 주식을 순매수했다. 국민연금 등이 포함된 연기금은 이날 13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전환했다. 전날까지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2거래일 동안 총 6985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이 기간 연기금은 삼성전자(-3020억원), 카카오(-1433억원), 네이버(-1296억원), 크래프톤(-1208억원) 등을 순매도했다. 국민연금이 매년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는 만큼 삼성전자는 비중 축소에 따른 기계적 매도세로 볼 수 있다. 플랫폼이나 게임주에 대한 순매도는 금리 인상 우려를 앞두고 고(高)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종목을 집중 매도한 결과로 풀이된다. 오는 27일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을 앞두고 LG화학도 753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연기금은 순매도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낙폭이 컸던 저평가주는 사모았다. 같은 기간 연기금은 SK이노베이션을 1090억원어치 샀다. LG전자(637억원), 포스코(538억원), 현대모비스(445억원), LG디스플레이(428억원) 등이 순매수 상위 종목을 차지했다. 성장산업이지만 최근 수급상 이유 등으로 낙폭이 컸던 종목들에 저가 매수 전략을 취했다는 얘기다.
이날 연기금이 13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돌아서긴 했지만 순매수 추세를 이어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연금이 2025년까지 국내 주식 비중을 15% 내외로 줄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말 보유 비중은 17.9%다. 기금 전체 금액이 늘어난다고 해도 비중을 줄이는 만큼 코스피지수가 상승기에 접어들더라도 국민연금은 기계적 매도를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설지연/고윤상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