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현산)이 대형 붕괴사고를 냈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작업 도중 건물 외벽붕괴로 17명의 사상사를 낸 지 7개월 만에 또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정부가 정확한 사고 경위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만약 중대재해법이 시행됐더라면 정몽규 현산 회장의 처벌 여부에 이목이 집중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회장은 대표이사는 아니지만 인사, 예산, 조직 등에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는지에 따라 처벌대상인 경영책임자로 규정될 수도 있다.
경찰과 광주 소방본부에 따르면 11일 오후 3시 50분쯤 광주 서구 화정동 소재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재까지 작업자 3명이 자력 대피했고 3명이 구조됐지만 6명은 연락이 두절됐다.
7개월 만에 대형 붕괴사고를 낸 현산의 안전 불감증을 탓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중대재해법 시행 전이라도 처벌 범위와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산은 지난해 학동 붕괴 사고를 내 중대재해법 적용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그럼에도 결국 처벌을 피해가 빈축을 사기도 했다. 또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에서도 "학동 붕괴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아 처벌이 어렵다"는 법의 맹점에 대한 논란도 제기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사고에 중대재해법이 적용됐다면 정몽규 현산 회장의 처벌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이번 사건이 법 시행 이후 발생했다면 현산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만약 연락두절된 6명 중 한 명의 근로자라도 변고를 당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 2조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부상에 그쳤다고 하더라도 2명 이상 근로자가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을 입은 경우라면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다만 현산이 하청에 도급을 줬고 재해를 당한 근로자들이 하청업체 소속이라면, 현산은 중대재해법 5조에 따라 ‘도급인’으로서 책임을 지게 된다. 도급을 준 회사의 경영책임자는 수급 회사(하청) 소속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을 확보해야 할 의무도 지기 때문이다. 물론 도급인이 실질적으로 현장을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를 전제로 법 적용이 가능하지만, 사고 현장이 현산의 시공 현장인 만큼 넉넉하게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도급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차, 3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도 법 적용 대상이 된다. 중대재해법 2조는 '여러 차례의 도급에 따라 행해지는 경우 각 단계의 수급인의 근로자이거나 수급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자'를 '종사자'로 봐서 도급인이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산이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했는지도 관건이 된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행위가 사고로 연결됐을 때 처벌한다. 의무를 이행했는지는 현산 본사의 시스템을 들여다 봐야 하는 만큼, 고용부는 본사를 수사 선상에 올려놓고 △현산 본사에 안전보건전담조직이 설치돼 있는지 △유해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프로세스가 있는지 △사고 예방을 위한 업무매뉴얼 있는지 △안전보건 인력이나 시설 등에 적절한 예산을 투입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게 된다.
특히 핵심 쟁점은 '적절한 하청업체(수급인)를 선정했는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급인이 하청업체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 능력과 기술을 제대로 평가했는지를 점검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현산이 하청업체 선정 과정에서 산재 예방 조치 능력을 제대로 평가했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과 재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이 됐다면, 처벌을 누가 받게 될 것인지도 관건이다. 고용부나 검찰의 수사는 당연히 오너인 대표이사를 타깃으로 할 가능성이 높다. 현산은 현재 유병규·하원기 대표이사 체제다.
만약 현산이 CSO(안전관리최고책임자)를 선임하고 별도 조직을 두고 있는 경우라고 해도 실질을 따져봐야 한다. 회사 대표가 현장 사무에 깊숙이 개입하거나 상시 출근을 하면서 시공에 대한 보고를 받고 관리를 했다면 CSO의 존재와 상관 없이 대표가 처벌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대표이사가 안전보건 관련 업무에 개입을 어느 정도 했느냐에 따라 처벌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몽규 회장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회장이 현산의 전반적인 시공 업무에 개입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가 발견된다면 중대재해법 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원칙적으로는 대표이사가 처벌 대상이 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상 수사 및 처벌 대상은 원칙적으로 등기이사"라며 "구체적인 처벌 범위는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 실무자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현장소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현장 실무자의 경우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근거로 수사 대상이 돼 형사처벌을 받게 될 수 있다. 1차, 2차 하청업체 대표들 역시 앞서 검토한 요건에 따라 처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