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이다"…LG생건 주가 폭락한 날, 종토방 뒤집은 개미들

입력 2022-01-11 10:25
수정 2022-01-11 10:44

대기업들이 악재를 맞닥뜨려 주가가 급락한 날에도 개인 투자자들은 사모으는 데 집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싸서 못샀던 우량주를 저가에 매수할 기회로 판단한 것이다. 증권가도 저점 매수 타이밍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일부에선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역발상 투자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는 떨어지는 칼날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LG생활건강은 13.41% 급락했다. 증권가가 작년 4분기 실적 역성장을 전망하면서 목표가를 일제히 내린 데 따라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주가가 100만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17년 10월 12일(97만5000원) 이후 4년여만이다. 특히 장중에는 16.6% 하락한 92만1000원까지 밀리며 신저가도 새로 썼다.

하지만 개미들은 매수 신호로 받아들인 모양새다. 외국인과 기관이 각각 1073억원, 220억원어치 팔아치우는 와중에 개인 투자자들은 홀로 1284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LG생활건강은 유가증권 시장과 코스닥 시장을 통틀어 이날 개인 순매수 1위 종목이 됐다.

개미들의 논리는 '결국 오르니 쌀 때 사자'는 것이다. 6개월 전만 해도 연중 최고가인 178만4000원을 찍었던 LG생활건강이다. 전성기 주가를 알고 있는 투자자들로서는 절반 수준으로 내려온 주가를 보고 '물타기'(주가 하락 시 저가 매수해 평균 매입단가를 낮추는 일)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다. 포털사이트의 주식 종목토론방(종토방)에는 "100만원까지 깨질 줄은 몰랐다"며 허탈해하는 반응과 함께 '기회로 보고 매집 중이다', '천운이다', '덕분에 평단 많이 낮췄다' 등의 글도 이어졌다.


이뿐 아니다. 이날 LG생활건강 다음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사들인 종목은 카카오와 카카오뱅크였다. 이 역시도 전일 각각 3.40%, 7.09% 급락하며 주식 게시판을 달궜던 종목들이다. 지난 4분기 실적이 전망치를 큰 폭 밑돌 것이란 증권가 전망에 류영준 카카오 공동대표 내정자의 사퇴 소식까지 겹치며 악재가 겹겹이 쌓였다. 하지만 투자자별 매매 동향을 보면 개미들은 10일 하루 동안 카카오뱅크 943억원, 카카오 890억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신세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세계 주가는 전일 6.80% 떨어진 23만3000원에 마감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잇단 인스타그램 게시물로 이른바 '멸공 논란'을 키우며 불매운동 조짐까지 일게 해서다. 다만 개인들은 주워담는 데 집중했다. 기관과 외국인의 매도 속에서 개인 홀로 204억원 순매수했다. 떨어진 주가에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추가 매수 타이밍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증권가는 의견이 분분하다. 기업의 미래 사업을 보고 매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외국인·기관이 던진 물량을 소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창권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규제 이슈라든가 오너리스크 등 악재가 한 번 터지면 투자자들 입장에선 한없이 유지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대체로 일시적인 조정에 그친다"라며 "결국 중요한 것은 본업이다. 해당 기업이 나아갈 사업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재료들에 휘둘리지말고 매수 관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묻지마 투자' 이른바 무지성 투자는 위험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 증권사 퀀트 연구원은 "반대로 생각하면 개인이 많이 샀다는 것은 외국인과 기관이 팔아치우고 떠난 종목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며 "저점 매수도 좋지만 투자에 신중론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