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유력 대선 후보가 어제 나란히 비전과 경제공약을 발표해 주목된다. 그동안 ‘비호감 대선’ ‘차악을 뽑는 대선’이라는 혹평을 들어온 판국에 유권자들에게 판단할 근거를 내놓은 것이어서 일단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기대보다 우려가 앞선다. 비전과 공약은 현실성 있는 실행계획이 수반돼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여야 모두 총론과 각론이 제각각이다. 현란한 장밋빛 청사진을 늘어놨지만 무엇으로 달성할 것인지 앞뒤가 안 맞는 게 허다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놓은 경제성장 공약부터가 그렇다. 그는 임기 내 5대 경제강국(G5),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 달성, 코스피 5000 시대 진입 등 이른바 ‘5·5·5’ 공약을 내놨다. 그의 말대로 ‘담대한’ 목표다. 이를 위해선 2030년이면 0%대까지 곤두박질칠지 모를 잠재성장률 추세를 뒤집을 만한 획기적 전략이 필수다.
그런데 실행전략이라고 내놓은 것이 ‘국가역할 확대’ ‘국가주도 투자’다. 산업 전반에 135조원의 재정을 투입해 디지털 전환과 인재 양성까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식이다. 재정을 마구잡이로 풀어 나랏빚만 늘린 채 민간활력 저하, 일자리 참사를 초래한 게 지난 5년간이다. 급변하는 대전환기에 ‘민간주도 경제’로 전환하지 않고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지각있는 경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런데도 이미 실패한 ‘재정투입’ 모델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게다가 정권 의도대로 예산을 쓰기 위해 기획재정부에서 기획기능을 떼어내 청와대 직속으로 두겠다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하기 좋은 ‘규제 프리 환경’을 만들겠다는 공약도 공허하게 들리긴 마찬가지다. 말로는 기업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혁신공간을 만든다지만 신기술은 기득권 진입장벽에 막히고, 노동계 표를 얻기 위해 기업들이 극구 반대하는 노동이사제를 관철하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총론 따로 각론 따로’라면 ‘747 공약’ ‘창조경제’ 등 앞선 정권들의 실패를 답습할 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작은 정부’와 잠재성장률 4% 회복 등을 외치지만 그가 내놓은 공약이라는게 기껏해야 임대료 나눔제, 출산 지원금, 사병 월급 인상 등 거꾸로 가는 ‘퍼주기’ 일색이다. 국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연금·노동개혁에 대해선 여전히 모호한 발언뿐이다. 그래놓고 “시켜주면 잘하겠다”는 식이니 유권자들이 신뢰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오히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퍼주기 근절, 연금·노동개혁, 청와대 대폭 축소 등의 ‘소신 공약’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대선까지 겨우 56일 남았다. 여야 후보는 이제라도 국민이 납득하고 신뢰할 만한 실행계획을 내놔야 한다. 그럴싸하고 듣기 좋은 소리만 나열하는 게 미래비전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