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임시방편 그친 '위원회 공화국' 대책

입력 2022-01-09 17:15
수정 2022-01-10 00:16
“위원회가 일선 현장에서 규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6일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가 끝난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많은 중소기업이 불편과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6000여 개의 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활동과 관련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인허가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 등을 확보한다는 명목이다. 이와 관련해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 옴부즈만’이 위원회 운영 실태를 진단한 결과 기업에 불필요하거나 과도한 부담을 주고, 의견 청취도 하지 않는 등 문제점이 무더기로 드러났다.

하나의 개발 행위에 대해 분야별로 위원회 심의를 별도로 받도록 하는가 하면, 위원회 심의에서 제시된 모든 의견을 기업에 무조건적으로 수용할 것을 강요하는 등의 사례가 지적됐다. 이렇다 보니 전문가가 참여한 위원회에서 통과한 사안이 비전문가가 참여한 또 다른 위원회에서 거부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부는 진단 결과를 반영해 위원회와 관련한 1800여 개 규제를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불필요한 심의 대상을 축소하고, 유사·중복 심의를 통합·간소화하며, 심의 면제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통해서다.

기업들은 그러나 위원회 자체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 부처 위원회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622개로, 문재인 정부 들어 사상 처음 600개를 돌파했다.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노무현 정부(579개) 때보다 40여 개 많은 수치다. 지난해에만 2050탄소중립위원회, 수소경제위원회, 납세자보호위원회, 중앙소음대책심의위원회 등 30개가량이 늘어났다.

이들 위원회는 기업에 규제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지자체 위원회에 속한 위원 수는 3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친정부 인사나 고위층 측근들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 수단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교수 출신 장관이 수개월의 짧은 임기 동안 친분이 있는 교수들을 대거 산하 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위원회를 정리하기 위한 ‘위원회 일몰제’ 도입 등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800여 개의 규제를 개선한다고 해도 기존 위원회들은 1만8000여 개 신규 규제로 대응할지 모를 일이다. 오줌이 식고 나면 더 얼어붙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