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와대의 기부단체 행사에서 93세 할머니의 감동적인 사연이 참석자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열 살 때부터 경성역에서 순사를 피해 김밥을 파는 등 힘들게 모은 재산을 ‘돈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행복’이 너무 좋아서 모두 기부한 박춘자 할머니의 회상과 눈물이 너무나 숭고하고 귀감이 됐기 때문이다. 그 행사 이후 큰 감동을 준 기부 천사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100억원대 전 재산을 학교에 기부한 김순전 할머니다.
어느 날 모시 저고리를 입은 90대 할머니 한 분이 총장과 직접 면담한 뒤 기부를 결정하겠다며 불편한 몸으로 학교를 찾아오셨다. “이북에서 이불 한 채 들고 내려와 굶기를 밥 먹듯 하고, 평생 미장원 한 번 안 가며, 버스비 아끼려 후암동에서 동대문까지 네다섯 정거장을 매일 걸었고, 수도 없이 많은 일을 하며 모았다.” “지금은 인재가 필요하니, 꼭, 돈 없어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저, 어려운 아이들 훌륭한 일꾼으로 만들어 달라”는 당부였다. 큰 재산을 모아 기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 그 자체였다. 수차례 협의를 거친 후, 용도와 미래 계획까지 꼼꼼히 조건을 정리한 뒤 기부를 결심하셨다.
학교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필요한 공증과 소유권 이전 등의 절차를 마쳤고, 불편한 할머니의 일상도 도맡아 챙겨드렸다. 개인적으로도 가깝게 지내며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사도 함께 나눴다. 주변에서 사기로 피해를 많이 입었고, 심지어 학교에 기부를 알아봐 달라고 했더니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람도 있어 직접 찾아왔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국립대는 정부가 책임지고, 사립대는 누군가 도와줘야 않겠느냐”는 걱정도 함께했다. 한 번은 “총장, 내가 갈 자리 옆에 묫자리가 하나 남아 있으니, 나중에 쓰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 할머니는 낙상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어 유족들의 유류분 반환 청구로 학교는 예상치 못한 소송에 휘말렸다. 감동의 드라마가 일순간 법적 분쟁으로 추락했고, 학교가 오히려 고인의 유지(遺旨)를 지키자는 형국이 됐다. 결국 법원의 조정으로 학교에는 일부만 배분됐지만. 법적 제약과 유족의 이견으로 할머니의 깊은 뜻을 제대로 실행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비록 연세대 백양누리에 작은 ‘김순전홀’을 마련하긴 했지만, 숱한 사연으로 응결된 100억원대 재산을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제 이름을 딴 장학금’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가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1900년에 거액을 기부해 세브란스병원을 탄생시킨 루이스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 씨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명언을 남겼다. 아무리 유명을 달리해도 자신이 모은 것을 자신의 뜻대로 ‘주는 기쁨’도 보장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