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일(현지시간) 열린 ‘2022 미국경제학회(AEA)’에서 세계 석학들은 미국의 시장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했다. 물가가 치솟고 공급 병목과 인력 부족 현상이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처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레드라인 넘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현재 상황을 가장 비관적으로 봤다. 서머스 교수는 ‘팬데믹(대유행) 이후에도 성장이 가능한가’란 세션에서 “지금 우리는 가장 느슨한 재정 여건과 통화정책 속에서 가장 빡빡한 노동시장을 보고 있다”며 “이는 우리가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금리가 크게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향후 2~3년 동안 인플레이션 전망을 더 비관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도 같은 세션에서 “원칙적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4월 미국은 이미 레드라인을 넘었을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아졌다”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규칙과 준칙 기반 정책으로 되돌아갈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테일러 교수는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운영 지침으로 삼던 ‘테일러 준칙’의 창시자다. 2018년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과 함께 Fed 의장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테일러 준칙은 중앙은행의 재량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목표치와 실제 시장 상황의 격차에 따라 기준금리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수요는 추세 이상으로 증가해 이미 수급 불균형 상황인데 통화정책은 여전히 완화적”이라며 “이 때문에 올해도 인플레이션이 매우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재정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7~8일 잇따라 토론자로 나와 “많은 국가가 부채 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대부분 나라들이 부채 구조조정 해결법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을 찾으려는 의지조차 없다”고 비판했다. “올해만 여덟 번 금리 올려야”참석자들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주문했다. 시장 예상보다 더 빨리, 더 강도 높게 돈줄을 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머스 교수는 “점진적으로 연착륙하기 위해선 Fed와 시장 전망보다 훨씬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가뇽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 연구위원은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감안하면 올해 실질금리는 연 -2% 이하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Fed가 훨씬 더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수급 불균형도 심하기 때문에 올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열릴 때마다 매번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이상 올려 연내 연 2% 정도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올해 금리 인상 횟수가 여덟 번으로 늘어 지난해 12월 FOMC에서 예상한 3회를 훌쩍 뛰어넘는다.
퍼먼 교수도 “정책이란 게 1년의 시차가 있을 수 있는데 Fed가 오는 3월부터 6월 사이에 어떤 결정을 하든 올해도 여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펴게 되고 내년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며 Fed의 변화를 요구했다. 캐서린 만 영국 중앙은행 통화정책위원은 “글로벌 공급 차질 문제를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한다”며 “미국 경제가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에 혁신을 계속할 수 있도록 미국 내 투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여러 위험을 관리하려면 가까운 미래보다 먼 미래를 보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코로나19 이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며 “국가 간 백신 불평등 같은 문제는 국제적인 종합 대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