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시장 1/4 토막난 사케, 해외선 인기..세계문화유산 추진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2-01-09 07:34
수정 2022-01-09 14:39

일본 사케의 해외 수출규모가 11년 연속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한다.

일본 문화청은 지난해 10월15일 사케와 일본소주 등 전통 양조방식을 국가 등록무형문화재로 지정했다. 국가 등록무형문화재 지정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록을 위한 사전 단계로 평가된다. 작년 2월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가 국회 연설을 통해 사케와 일본소주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지 8개월 만이다.

일본 문화청은 "같은 양조법으로 제조하는 와인의 알콜도수가 약 15%인 반면 사케는 최대 20%"라며 "높은 알콜도수를 만들어내는 일본 양조법은 세계적으로도 걸출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가운데 주류는 몽골의 말젖으로 술을 빚는 양조기술과 벨기에 맥주문화, 조지아의 전통적인 와인제조법 등 셋 뿐이다. 한국에서도 막걸리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구체화되지는 않고 있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사케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일본 술의 인기가 높아진데 힘입어서다. 2020년 사케의 수출금액은 241억4100만엔(약 2509억원)으로 11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만에 3배 가까이 급증했다.


2013년 일식이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이후 함께 일본 술의 인기가 덩달아 높아지는 선순환이 형성됐다고 일본 정부는 보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해외의 일식 레스토랑 숫자는 2006년 2만4000곳에서 2021년 15만9000곳으로 늘었다.

농업 칼럼리스트 허북구 농학박사는 지난해 칼럼에서 "표면적으로 일본의 등록 추진 목적은 전통 양조기술의 보존이지만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이라는 화제성을 이용한 해외 인지도 향상과 수출량 증대가 실제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는 사케 수출규모가 1조엔에 달하는 프랑스 와인 수출규모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라고 보고 사케 세계화에 힘을 쏟는다는 방침이다. 2025년 사케 수출목표액을 600억엔으로 잡았다.

해외에서의 인기와 대조적으로 일본 내에서는 사케 시장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2020년 사케 출하량은 41만㎘로 전성기였던 1973년 177㎘의 1/4 수준이다.

젊은 층의 선호도가 맥주와 하이볼 등 저도주로 옮겨간데다 1990년대초 버블(거품) 경제 붕괴 이후 사내여행과 연회 등 단체 회식이 줄면서 일본인의 알콜 소비량이 크게 감소한 탓이다. 일본 사케의 25%를 생산하는 효고시 나다 지역이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도 출하량을 감소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사케 소비량이 줄어들자 일본 양조가는 단가가 높은 준마이주(주류용 알콜을 섞지 않고 쌀과 누룩으로만 만든 사케)와 다이긴조주(양조에 사용되는 쌀을 50% 이상 깎아서 만드는 사케) 등 고급 사케의 양조비중을 높이고 수출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2013년 일식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성사시킬 때 일본 정부측 검토회장이었던 구마구라 이사오 미호뮤지엄 관장은 "일본 정부가 일본 술을 국가문화재로 보호할 방침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유네스코무형유산등록도 매끄럽게 진행될 것"이라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