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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원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괴상한 경제 정책' 탓에 가치가 곤두박질한 터키 리라화. 이 화폐의 변동성이 급기야 비트코인보다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암호화폐매체 코인데스크는 7일(현지시간) 리라의 90일 변동성이 65%로 치솟아 61%를 기록한 비트코인을 앞질렀다고 보도했다. 코인데스크는 "법정화폐인 리라가 '가치 저장·교환 수단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 비트코인보다 더 위험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유로, 파운드, 엔 등의 90일 변동성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세계 18위 터키는 물가 급등과 화폐 가치 폭락으로 사실상 경제 위기 국면에 빠져들고 있다.
터키의 물가상승률은 19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투르크스탯에 따르면 지난달 터키 물가는 1년 전보다 36.08% 급등했다. 특히 서민 생활에 밀접한 식료품값이 43.8%, 교통비는 53.66% 올랐다.
터키는 만성적인 고물가를 겪어왔는데,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기름을 부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 연 19%이던 기준금리를 넉 달 연속 내려 연 14%로 떨어뜨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시중에 풀린 돈이 물가 상승을 유발하자 유동성 회수에 나선 세계 주요국과 정반대 행보다.
중앙은행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요구 때문이다. 그는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펴고 있다. 자신의 지시에 반기를 든 중앙은행 총재나 재무장관은 계속 갈아치웠다.
통상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오르고, 자국 화폐의 상대적 가치는 하락한다. 지난해 첫날 1달러당 7.43리라였던 환율은 12월 한때 18.36리라까지 치솟았다. 8일 기준으로는 13.87리라. 가치가 1년 만에 반토막난 것이다.
터키 부동산 시장은 외국인들의 '줍줍 놀이터'가 될 판이다. 작년 1~11월 터키에서 외국인이 사들인 아파트는 5만채를 넘었는데, 전년 동기 대비 40% 많은 규모다. 세계 헤이즐넛의 70%를 생산하는 터키 농가들은 비용 급등을 감당하지 못해 재배량을 줄이고 있다. 터키산 헤이즐넛을 주로 쓰는 '누텔라'를 포함해 세계 식료품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터키 최대 경제단체인 터키경제산업협회(TUSIAD)는 지난달 18일 "정부가 저금리 정책을 포기하고 경제학 원칙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의 경제 자문관인 아이한 오간은 "경제학 원칙은 서구를 위한 것"이라고 거절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물가가 들썩이자 "노동자들이 물가에 짓눌리지 않게 하겠다"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으로 응수했다. 올해 터키의 최저임금은 지난해보다 50% 오른 월 4250리라(약 36만원). 그러나 화폐 가치를 감안하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는 해외 투기 자본의 배만 불린다"며 "저금리로 생산·수출을 뒷받침하면 결국 물가가 안정화하고 리라 가치도 회복할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는 최근 경제인 간담회에서 "모든 예금을 외화가 아닌 리라화로 해야 한다"고도 했다.
경제학원론만 읽어도 알 수 있는 기본 상식조차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셈이다.
"생존하고 싶다면 리라를 달러로 바꾸고, 번성하고 싶다면 리라를 비트코인으로 바꿔라."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CEO
"터키 사람들은 구매력의 절반을 잃었다. 비트코인을 좀 갖고 있다면 좋지 않을까?" ─캐시 우드 아크인베스트 CEO
어느 정치 지도자의 '금리 도박'이 촉발한 리라화의 추락은 비트코인 지지자들을 기세등등하게 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돈을 마구 뿌릴 수 있는 중앙집권적 금융 시스템을 비판하며 탄생했고, 생산량이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특징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