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원유, 우라늄 가격을 널뛰게 만든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비트코인 채굴 활동이 탄소 감축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내쫓긴 비트코인 채굴업자들이 카자흐스탄에 대거 몰려든 배경이다. 우라늄을 비롯해 원소 주기율표에 등장하는 원소 105종 중 거의 모든(99종) 원소가 카자흐스탄 땅에 묻혀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회원국이기도 하다.
‘천연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글로벌 경제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원유, 우라늄은 물론 비트코인 채굴까지 카자흐스탄에 몰렸는데, 가스값 상승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전국적 시위가 다음주까지 이어질 경우 국제 유가가 뛰고 장기적으로는 우라늄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카자흐 시민 “가스값 낮춰라”
CNBC는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가 세계적인 충격파를 일으키고 있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자흐스탄 사태가 세계 경제의 ‘블랙스완급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블랙스완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는 것을 뜻한다.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하루에만 8% 하락했다. 7일에도 하락세를 이어가며 결국 4만1300달러 선으로 주저앉았다. 우라늄 가격은 6일 파운드당 47달러를 기록해 3일(42달러) 대비 11.9% 상승했다. 2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전날 대비 2% 오른 배럴당 79.46달러를 기록했고, 3월물 브렌트유는 1.19달러(1.5%) 오른 배럴당 81.99달러로 마감했다.
이 같은 가격 변동세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상승에 분노한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에서 비롯됐다. 연초 카자흐스탄 정부가 LPG 가격 상한제를 폐지한 것이다. 그간 카자흐스탄 정부는 에너지업체에 보조금을 지급해 생산 단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LPG를 공급해왔다. 하지만 셰브런 엑슨모빌 등 외국계 에너지 회사들이 정부의 이 같은 조치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다고 반발했고 LPG 공급이 불안정한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카자흐스탄 정부는 가격 상한제를 폐지하며 가격을 시장에 맡겼지만 기대와 달리 LPG 가격은 두 배 넘게 뛰어올랐다. 지난해 1L 평균 50텡게(약 138원)였던 LPG 가격은 120텡게(약 331원)로 2.4배로 뛰어올랐다.
지난 2일 서부 지역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고 점차 과격해졌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 LPG 가격상한제를 부활시킬 것을 5일 지시했다. 폭력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아스카르 마민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사임도 수리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은 동맹국인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 등 옛 소련권 6개국의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는 2002년 창설 이후 처음으로 회원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 “미국 석유기업 타격 가능성”카자흐스탄 사태의 파급력은 이번 시위가 장기화하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리스크 분석회사 RANE의 매트 오르 유라시아 애널리스트는 “석유업체 회사의 노동자들이 시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다음주 이후 시위에 나가는 노동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원유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론적으로 이번 사태로 미국 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9년 기준 카자흐스탄에서 추출된 원유의 약 30%를 미국 석유업체들이 사용했다.
이번 사태로 우라늄 가격이 급등했지만 당장 원자력발전소 운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업체들이 원전 가동의 핵심 원료인 우라늄을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국가에 대한 원자재 의존이 글로벌 공급망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카자흐스탄은 세계 우라늄의 약 40%를 생산하고 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