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전문가들이 인정한 명품 건축물인데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되레 주변에 심어진 나무들에 더 눈길이 간다. 이 건축물의 콘셉트이자 설계의 핵심은 ‘자연과 괴리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서울 양천구 양천공원 안에 자리한 ‘양천공원 책쉼터’ 이야기다. 올해로 조성된 지 35년 된 양천공원은 원래 거대한 야외공연장만 덩그러니 있던 노후 공원이었다. 양천공원 책쉼터는 이 구조물 바로 옆에 지어져 지난해 10월 개관했다. 서울시 푸른도시국에서 기획한 ‘책쉼터’ 조성 1호 사업으로 들어선 공간이다. 이 건물이 재밌는 점은 외부에선 건물과 공원이, 내부에선 사람과 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공원 본래 모습에 건물만 얹힌 외관평지에서 보면 평범한 단층 건물로 보이는 책쉼터의 존재감은 바로 옆 한국전력공사 양천지사 건물 위에 가서 보자 여실히 드러났다. 흡사 그 모습이 구멍이 송송 뚫린 스위스 에멘탈치즈를 닮았다. 건물 정면부는 서쪽의 놀이터를, 건물 후면부는 동쪽 잔디밭의 둥근 선형 그대로 오목하게 만들었다. 설계를 맡았던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대표는 그사이를 또다시 동그랗게 파냈다. 이미 존재했던 감나무와 느티나무를 파내지 않고 그대로 두기 위해서였다. 건물이 나무에 되레 공간을 내준 듯한 모양새다.
왜 그랬을까. 김 대표가 책쉼터를 설계할 때 돌아본 양천공원엔 다양한 나무가 듬성듬성 골고루 심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수형이 예쁜 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나무들을 자르지 않는 방향으로 설계를 시작한 게 매우 독특한 구조의 책쉼터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렇게 책쉼터는 최초 공원 설계안을 파괴하지 않고 과거 있던 나무들의 존재는 물론 시설물의 형태를 수용해 나무 사이사이 공간에 집을 앉히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오목하게 생긴 건물의 모양은 이순신 장군의 해상 전투 배치 형태인 ‘학익진’을 보는 것처럼 이 오래된 공원을 양팔로 품고 있는 느낌이 든다.
건물 색상에도 힘을 준 모습이다. 462㎡의 이 단층 건물은 녹음이 우거졌을 때 또는 단풍잎이 떨어진 뒤 나뭇가지들이 돋보여 보일 수 있도록 건물 전체를 아이보리색으로 마감했다. 이 역시 먼저 있던 자연의 존재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노크하듯 조심스레 건물이 들어섰다는 느낌이 든다. 건물보다 먼저 들어선 원형 모양의 야외 공연장과의 조화에도 신경썼다. 공연장 뒷부분과 책쉼터 사이에는 두께 9㎜ 철판을 가느다란 원형 기둥들로 받친 간결한 형태의 캐노피를 설치했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함께 온 어른들이 쉴 수 있는 그늘 공간이다.
아늑하면서도 개방감 넘치는 내부잔디밭을 향하는 책쉼터 전면 창은 외벽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곳에 폴딩도어로 설치됐다. 의도치 않게 한옥의 처마가 연상된다. 날씨 좋은 날 폴딩도어를 활짝 열면 마치 대청마루처럼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다. 단차의 경계도 건축의 한 부분으로 쓰였다. 책쉼터 부지는 원래 1.2m 정도의 높이 차이가 있었다. 김 대표는 그 경사를 이용해 폴딩도어 바로 뒤를 계단식 좌석으로 만들었다. 소극장에 온 느낌이 든다. 실제로 날씨 좋은 날 폴딩도어를 열어 건물 밖 잔디밭을 작은 음악회나 소공연, 영화 상영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여는 야외무대로 활용한다고 한다.
내부도 일반적인 도서관 같은 평범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신경썼다. 책은 책장 같은 수납 구조물 대신 중앙 원형 보이드와 벽 곳곳에 있는 듯 없는 듯 꽂혀 있다. 공간의 중심엔 탁자, 소파 등이 자유롭게 배치된 독서공간이 자리했다. 흡사 책에 둘러싸인 거실 혹은 카페의 모습이다. 공간은 분명 책으로 둘러싸였지만 책 때문에 답답하지 않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듯한 구조였다. 누구든 편하게 들어와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거나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이 중심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양천공원 책쉼터는 올해 국토교통부에서 주관하는 2021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대상과 2021 서울시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책쉼터와 공원, 놀이터를 연계한 설계로 소통과 화합, 독서와 이야기, 쉼과 치유를 아우르는 주민 커뮤니티 공간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특색 있는 프로그램과 활동을 구현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혹서기와 혹한기에 이용이 뜸한 도시공원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 역시 눈에 띄는 부분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