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 작곡가 진은숙(60·사진)이 생애 두 번째로 쓴 바이올린 협주곡 ‘정적의 파편(Shards of Silence)’이 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세계 초연된다. 지휘 거장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런던 바비칸홀에서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인다. 그리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3)가 협연한다.
진은숙은 2002년 첫 바이올린 협주곡을 내놓은 지 20년 만에 다시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썼다.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그는 2004년 음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다. 당시 클래식계에선 이 작품에 대해 “새로운 세기를 여는 첫 걸작”이라고 호평했다. 송현민 음악평론가는 “그의 첫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은 현대 음악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잡았다”고 평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창작 활동해온 진은숙은 클래식의 주류인 유럽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아놀드 쇤베르크상(2005년),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2010년), 시벨리우스상(2017년) 등 작곡가에게 주는 권위 있는 상들을 휩쓸었다. 지난해 3월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문화예술아카데미 명예회원으로 선출됐고, 6월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덴마크의 ‘레오닝 소닝 음악상’을 받았다. 송주호 음악평론가는 “진은숙은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며 오페라, 성악곡, 관현악곡 등 다채로운 작품을 내놨다. 클래식 역사에 자기 고유의 영역을 개척한 음악가”라고 설명했다.
진은숙과 20여 년 동안 인연을 맺어온 사이먼 래틀이 이번 공연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2002년 베를린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던 래틀은 진은숙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을 초연했다. 2014년 진은숙이 스위스 루체른페스티벌의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인 ‘로슈 커미션’에 선정돼 ‘Le silence des Sirenes(사이렌의 정적)’ ‘choros chordon(현의 춤)’ 등을 발표했을 때에도 래틀이 베를린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초연했다.
진은숙의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이 나올 거라고 예상한 클래식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진은숙은 종류별로 악기에 따라 하나의 협주곡만 줄곧 써왔다. 그는 과거 자신이 세운 원칙에 대해 “모든 신작에는 존재 이유가 있어야 한다. 숱한 교향곡으로 다져진 음악사에 새로움을 추가하는 건 거대한 도전이고, 악기와 화성을 연구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가 마음을 바꾼 건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 때문이었다. 진은숙은 카바코스의 연주를 듣고선 자신의 원칙을 깼다. 진은숙은 “카바코스의 강렬한 개성과, 그가 연주할 때 음악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걸 보고 원칙을 깨기로 결정했다”며 “두 번째 협주곡은 완전한 침묵과 폭발하는 화음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등 첫 번째 협주곡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카바코스는 18세이던 1985년 핀란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88년 미국 나움버그 콩쿠르, 파가니니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2014년 독일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의 ‘올해의 음악가’상을 받은 그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릴 만큼 깊이 있는 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신작은 미국과 독일에서도 연주된다. 미국 보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는 3월 3일 보스턴심포니홀, 4월 14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이 곡을 연주한다. 27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는 3월 31일 이 곡을 독일 초연할 예정이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