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을 위해 마련한 인수 후 통합(PMI)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항공 빅딜’ 승인의 전제 조건으로 공항 슬롯(비행기 이착륙 횟수) 반납과 운수권 재배분을 제시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공정위의 합병 심사보고서를 받았다. 우기홍 사장 중심의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실사를 거쳐 작년 3월 산업은행에 PMI 계획을 제출했다. 산은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같은 해 6월 PMI 계획을 확정했다. PMI엔 두 회사뿐 아니라 통합 저비용항공사(LCC) 운영 및 고용 유지, 사업부문별 효율화 방안 등이 포함됐다.
대한항공은 PMI 계획을 제출하면서 항공 빅딜에 따라 신규 노선 선택 기회가 확대되고, 연결편이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합 시너지 효과로는 코로나19가 완전히 회복된다는 전제로 연 3000억~4000억원을 예상했다.
문제는 PMI 계획이 두 항공사의 현 슬롯과 운수권이 유지된다는 것을 전제로 수립됐다는 점이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슬롯 반납, 운수권 재배분 등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결합을 승인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상정했다. 항공업계의 ‘황금노선’으로 불리는 인천~런던, 파리 등 유럽 노선의 운수권이 축소되고, 낮 시간대 슬롯이 줄어드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항공기 운항이 대폭 축소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항공사 통합으로 인천공항 슬롯 점유율을 늘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PMI가 백지화될 위기에 처했다. 연간 4000억원으로 예상했던 통합 시너지 효과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두 항공사 기단 운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초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을 리스 계약 연장 없이 전량 반납하고 보잉의 중대형 기종인 B787 등 200~300좌석 규모의 중·대형기 위주로 기단을 재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공정위 결정대로 유럽 등 장거리 노선이 축소되면 이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항공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공정위 결정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정위는 항공기 운항을 줄이라고 요구하면서 운임을 인상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경우 계약직 근로자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거나 승무원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게 불가피하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