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는 사업 다 접어라"…워크맨 버린 '소니'의 근황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

입력 2022-01-04 14:38
수정 2022-01-04 14:51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이슬기의 주식오마카세에서는 매 주 하나의 일본종목을 엄선해 분석합니다. 이번주 다룰 종목은 '워크맨'과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유명한 소니(종목번호 6758)입니다.


2014년 9월 요시다 켄이치로(사진) 당시 소니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는 긴급기자회견에 참석해 거듭 머리를 숙였다. 그는 그해 2300엔의 순손실이 예상된다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배당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 가전명가로 세계를 호령했던 소니였으나 워크맨은 아이폰에, TV는 삼성과 LG에 잡아먹히고 말았다. 그는 이 날을 '소니가 바닥으로 떨어진 날'이라고 기억했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사장이 된 요시다는 머리를 꼿꼿이 들며 소니의 부활을 알렸다. 지금 소니엔 워크맨도 노트북도 없지만 영화와 음악, 그리고 고부가가치 가전이 남아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이제 요시다 사장은 소니가 가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융복합해 부활을 넘어 새로운 차원의 성장을 이루려 한다. 바로 메타버스와 자율주행차 분야다. ○'소니를 모르는 사장'이 부활시킨 소니
소니(종목번호 6758)는 지난해 말 1만4475엔을 기록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다. 지난해에만 주가가 40.7% 올랐고, 코로나19 이후 저점 이후로는 3배 가까이 올랐다. 현재 시가총액은 18조2542억엔으로 일본시장 2위다. 아직 2000년대 기록한 사상 최고가(1만6950엔)엔 여전히 못미치지만, 동전주(최저가 772엔) 신세가 됐었던 2012년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수 년 전만 해도 소니는 값싼 가전은 한국과 중국에, 고부가가치 제품은 미국에 밀리며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소니의 부활엔 전임자인 히라이 가즈오 전 사장의 역할이 컸다. 2012년 취임한 히라이 전 사장은 소니뮤직이라는 그룹사 내 변방 조직 출신이었다. 하지만 적자를 내던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을 크게 성장시키며 본사 사장까지 역임하게 된다. 그는 소니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돈이 안되는 사업은 다 접었다. 소니 전성기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던 뉴욕 맨해튼 본사 건물도 팔아버렸고 노트북(VAIO) 부문도 팔아버렸다. 소니 전직 임원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히라이 전 사장을 찾아 말리려 했다. 가전 명가야 말로 소니의 아이덴티티인데 이를 버리려 하냐면서 말이다. 사내 안팎에서 '전자 출신 아닌 사장이라 전자 중요한 줄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는 다 무시했다.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버렸던 건 아니다. 여전히 남아있는 디지털카메라와 TV가 그 예다. 소니는 과거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도 삼성에 밀려 고전한 적이 있다. 당시 소니는 광학기업 코니카미놀타의 카메라 사업을 인수해 고급형 카메라로 승부를 걸었다. 히라이 전 사장은 그 경험을 다시금 되새겨 TV를 남기되 4K TV처럼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부문만 남겼다. 지금 소니의 효자나 다름없는 이미지센서도 이런 과정에서 성장을 거듭해 현재 전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히라이 전 사장의 결단에 소니는 2016년 순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2017년부턴 이익이 큰 폭 상승해 작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소니는 2021년 4월~2022년 3월 영업이익이 직전년도 대비 7% 증가한 1조400억엔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대로라면 1946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엔을 돌파한 것이 된다.

○SW×HW 양축으로 메타버스·자율주행차 잡을까히라이 전 사장의 바톤을 이어받은 요시다 사장은 이제 소니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시키려 한다. 히라이 전 사장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성과를 냈다면 이제 두 영역을 융복합시켜 새로운 차원의 소니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소니는 소프트웨어에선 부문 간 융합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있다.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의 지적재산권(IP)을 통해 플레이스테이션 게임도 만들고, 또 애니메이션 주제가로 음반을 제작하는 식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에어를 성공적으로 융복합하면 소니는 개화하는 메타버스 세계에서 승기를 잡을 수도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소니는 이미 플레이스테이션 가상현실(VR) 헤드셋을 갖고있고 페이스북의 오큘러스에 이어 점유율 2위(2020년 스태티스타 조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말엔 10원짜리 크기 화면에 4K 해상도를 지원하는 4K OLED 마이크로디스플레이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를 VR 헤드셋에 적용하면 4K 해상도로 VR 체험이 가능하다. 화질이 좋지 않아 픽셀이 깨지는 타사 VR 헤드셋과 차이를 확 벌려놓을 수 있는 셈이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소니는 포트나이트(로블록스와 같은 메타버스 게임)에 이미 4억5000만달러를 출자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이미 출시된 META ETF를 포함해 곧 출시할 프로셰어즈의 메타버스 ETF에도 소니가 비교적 높은 비중으로 포함돼 있다.



자율주행차 역시 소니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또 다른 영역이다. 자율주행차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미지센서는 이미 소니가 세계에서 가장 잘 만든다. 그리고 자동차가 운전자의 개입 없이 알아서 잘 굴러가게 되면 탑승자는 차량 내에서 즐길 게임이나 영화 등 콘텐츠를 필요로 하게 된다. 소니는 영화 <스파이더맨>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등 이미 방대한 콘텐츠를 보유한 회사다. 소니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 전기차 '비전S'가 마냥 헛된 희망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증권가는 부활한 소니가 20년 전 기록한 사상 최고가(1만6950엔)을 뛰어넘을 것이라 본다. 토카이도쿄는 지난달 23일 소니의 목표주가를 1만4000엔에서 1만8000엔으로, 크레디트스위스는 같은달 8일 1만5700엔에서 1만7000엔으로 각각 끌어올렸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