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건순의 제자백가] '톱티어' 청년들이 정치를 멀리한다

입력 2022-01-03 17:18
수정 2022-01-04 00:07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티어’와 ‘톱티어’라는 말이 있다. 많은 인기를 누린 리그 오브 레전드(LOL)라는 게임에서 나온 말이다. 독일어로 ‘동물’ ‘짐승’이란 뜻의 티어(tier)는 LOL 게임에서 단계라는 뜻으로 쓰이고 수준이라는 말로 통한다. 해당 게임에서 최고 단계 플레이어를 톱티어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 수준을 뜻하게 됐다. 나라를 불문하고 톱티어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입문해서 학습하며 나라를 이끌 리더로 성장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라가 잘살고 풍요로워질수록 톱티어 젊은이들의 정치 입문은 난망한 이야기 같다.

대한민국은 경제 대국이다. 사실상 선진국이고 많은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젊은이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정치는 비범한 젊은이에게 선망과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나라가 잘사는 나머지 톱티어 청년들이 정치에 투신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경제 대국이 되면 정치를 하지 않아도 톱티어 청년들이 얼마든지 자신의 우수함과 권력욕을 충족할 수 있는 장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굳이 정치에 입문해 불확실해 보이는 미래에 불안해하면서 나보다 무능한 늙은 꼰대들의 수발을 들며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릴 이유가 하나도 없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나라가 너무 잘사는 나머지 국회의원보다 좋은 직업이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비범한 청년들에게 유명 유튜버보다 국회의원이 좋은 직업으로 보일까? 넷플릭스 등으로 자고 일어나면 월드스타가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전업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톱티어 청년들에게 매력이 있을까?

더구나 저열한 신상털이 문화와 미투 운동 때문에 공적인 장에 올라오면 과거가 모두 처절할 정도로 공개되는 나라다. 한순간에 자신의 평판과 사회적 신용을 억울하게 탕진당하고 나락에 빠질 수 있다. 이러니 톱티어 청년에게 정치는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 분야에서 자리를 완전히 잡은 톱티어 청년일수록 정치를 할 이유는커녕 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많을 뿐인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정치는 세대교체가 안 되고 심각하게 적체됐다. 집단의식화하고 똘똘 뭉친 386세대의 장기 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약적 수명 연장과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충성스러운 유권자 집단인 호남과 40대가 있기에 386들은 더욱 장시간 득세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설상가상 갑자기 선진국이 되면서 톱티어 젊은이들이 정치를 기피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늙고 열등한 이들에게 지배당해야 한다. 386들이 쌓아 올린 철옹성에 톱티어 청년이 수혈되려야 될 수가 없는 문제까지 있는 실정에 세대교체는커녕 정치 수준이 계속 추락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젊은이가 정치를 한다면 또래 집단 내에서 3~4등급 젊은이들이 나설 일이 될 듯 싶은데 그들이 늙은 정치인이 쥐여주는 칼이나 잡고 휘두르는 사냥개 노릇이나 하지 않을까? 기껏 여의도에 소모품으로나 쓰이는 청년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통치를 위임한다? 아찔한 일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했지만 정작 우수한 청년들의 정치 기피 때문에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좌우를 떠나서 어떻게 청년들이 정치에 입문하도록 유인체계를 만들지, 내부에서 키우고 성장시키는 팜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 내부의 팜시스템을 어떻게 리더십 창출 프로세스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수한 청년들의 정치 입문·투신 문제를 새해에는 반드시 공론화하고 담론화해야 한다. 공론의 장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되고 언론에서도 의제로 설정해 사회의 큰 숙제로 던져야 한다. 정당들 역시 수용해서 심각히 논의해야 할 것이다. 여야와 좌우를 막론하고 야망 있고 비범한 톱티어 청년을 어떻게 정치에 입문시켜 우리의 리더로 성장시킬지에 대해서 말이다. 정치 수준이 나아지지는 못해도 후퇴해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