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인재 확보전…"美 30만명 부족"

입력 2022-01-03 17:02
수정 2022-01-04 02:48

세계 반도체기업들이 ‘인재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반도체 생산능력 확대에 나서면서 그만큼 우수 인력이 많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도 인력난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일본 정부는 규슈지역 고등전문학교를 반도체 인재 육성 거점으로 만들기로 했다. 이곳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 인재를 지원하는 방법으로 자국의 반도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미국에서만 30만 명 부족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중국 대만 등지의 반도체기업 수요에 비해 근로자가 각각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 부족하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의 컴퓨터·전자제품산업 근로자는 지난해 11월 기준 109만1800여 명으로 2017년 초(103만여 명)보다 6만 명가량 증가했다. 늘어난 인력 중 상당수가 반도체산업 종사자로 추정된다. 하지만 인력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사 에이트폴드에 따르면 2025년까지 7만~9만 명을 추가로 채용해야 기업 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역점을 둔 ‘반도체 자립’이 현실화하면 30만 명이 더 필요하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에이트폴드는 미국에 팹(제조시설)을 충분히 지어놓고도 인력이 부족해 가동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대만은 작년 8월 기준으로 근로자가 2만7700명 부족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44% 급증했다. 인력난이 심화하면서 대만 반도체산업의 평균 임금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중국은 최근 5년 동안 반도체 인력을 두 배로 늘렸는데도 여전히 25만 명이나 부족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은 매년 10%씩 인력을 늘리기 위해 인재 확보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각 기업이 생산기지 확충에 나선 상황이어서 구인난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 설비투자액은 152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가장 큰 문제로 전문인력 확보가 꼽힌다. 반도체 생산 과정의 자동화율은 매우 높지만 팹 운영과 연구개발(R&D)에는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인재들은 반도체기업을 마다하고 고연봉을 제시하는 실리콘밸리 빅테크로 몰리고 있다. 각국 정부 ‘인재 확보전’기업들은 임금 인상, 교육 등 복지 확대, 유연근무제 등을 내세우며 인재 확보전에 나섰다. 여기에 각국 정부까지 적극 지원하고 있다. 자국의 반도체 패권을 지키거나 역량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올해 규슈지역 8개 고등전문학교에 반도체 제조 및 개발 관련 교육과정을 개설할 예정이다. 규슈 구마모토현에는 2024년 대만 TSMC의 새 반도체 공장이 들어선다. 고등전문학교는 중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5년간 전문교육을 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한국의 실업계 고교와 전문대학이 결합한 형태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관련 기업과 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교육과정을 정하기로 했다. 일본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의 50%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9% 남짓으로 밀린 상태다.

대만은 지난해 5월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TSMC 등은 여러 대만 대학과 손을 잡고 반도체 전문과정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 중국에선 지난해 말 기준 베이징대 칭화대 등 12개 대학에 반도체 전공과정이 마련됐다.

미 반도체기업들은 해외 인력 채용의 문턱을 낮춰달라고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고 있다.미 대학에서 전자공학 전공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반도체 전문인력을 자급자족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고운 기자/도쿄=정영효 특파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