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주변에서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는 ‘뇌졸중’이 맞느냐, ‘뇌졸증’이 맞느냐는 것이다. 물론 뇌졸중이 정답이다. 요즘은 많은 건강 프로그램에서 뇌졸중을 다루기 때문에 이 용어도 일반인에게 꽤 익숙해진 듯하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에는 병원에서조차 홍보 현수막에 ‘뇌졸증 예방’이라고 오기하곤 했다. 이 어색한 용어는 어떻게 병명으로 자리 잡게 된 걸까?
뇌졸중(腦卒中)의 뜻은 ‘뇌가 졸지에 다친다’는 의미다. 졸(卒)은 ‘갑자기’라는 뜻이고, 중(中)은 ‘때리다’ 혹은 ‘맞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병명에는 협심증, 통증 등 증상을 의미하는 증(症)으로 끝나는 병명이 많기에, 일반인이 뇌졸증이 맞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건 당연할 듯싶다. 이 용어를 작명하신 분은 서석조 박사라고 알려져 있다. 서 박사는 1946년 일본 교토부립 의대를 졸업하고, 코넬대 신경내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5년 귀국해 이후 순천향대를 설립했다. 필자도 젊은 시절엔 뇌졸중이라는 용어를 서 박사의 오리지널 작명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20년 전쯤 일본의 한 학회에서 초청을 받았을 때 당시 필자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을 하나 만났다. 한 일본인 학자가 강의하면서 슬라이드에 버젓이 일본어로 뇌졸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일본 학자들과 영어로 소통하기에 뇌졸중의 일본어 명칭이 우리와 동일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서 박사는 아마도 1955년 이후에 작명했을 텐데, 당시 낙후된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만든 의학용어를 일본이 받아들였단 말인가? 이 용어의 출처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확하게 얘기하자. 뇌졸중은 일본어가 맞다. 이런 용어를 일본식 한자어라고 하는데,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한자 어휘를 말한다. 근대화가 뒤처진 우리나라에서는 개화기와 식민지 시대에 수많은 일본식 한자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는데, 교육(敎育), 문화(文化), 경제(經濟), 자유(自由), 대학(大學) 등 그 예는 수없이 많다. 뇌졸중이라는 이름도 그 예 중 하나일 뿐이다.
2003년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회는 “뇌졸중이 일본에서 유래한 용어”라며 뇌중풍(腦中風)을 새 용어로 제안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의학이 발전한 한국, 일본의 영향으로 중국, 대만에서도 뇌졸중이라는 용어를 역수입해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한자 문화권의 네 나라가 모두 같은 용어를 사용하는 상황이었기에 이 시도는 중단됐다고 한다.
뇌졸중이라는 명칭의 어원은 일본이 분명하지만, 부단한 노력으로 뇌졸중의 이름값을 높인 것은 분명 후대 한국 의학도들의 공적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 왜곡을 욕하면서 우리도 같은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실력으로 갚아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