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기술 집약체 SMR…사고 확률, 대형 원전 1만분의 1

입력 2022-01-02 18:11
수정 2022-01-03 01:09

“당황하지 마세요. 가상 지진 상황입니다.” ‘E2C(Energy Exploration Center)’로 불리는 20평 남짓의 첨단 시뮬레이션 종합상황실이 갑자기 흔들렸다. 50개 넘는 모니터가 실시간으로 12개 소형모듈원자로(SMR)를 관제하는 곳이다. 더그 보우만 뉴스케일 플랜트엔지니어링 디렉터는 지난달 15일 “EMP(전자파공격)와 항공기 충돌, 초강력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며 “첨단 제어시설에 대한 일상 테스트”라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뛰어난 안전성 덕분에 뉴스케일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1차 설계 테스트를 세계 최초로 통과했다.최첨단 기술의 종합체 SMR일반인이 ‘원전’ 하면 떠올리는 가장 큰 공포는 방사능 유출이다. 러시아 체르노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참상이 공포를 키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간과된 대목이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가동 중인 대형 원전의 상당수가 40~50년 전 기술을 토대로 설계됐다는 점이다. SMR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모든 초점은 안전성을 높이는 데 집중돼 있다.

앤드루 페인터 뉴스케일 연구원은 “뉴스케일 SMR의 사고 확률은 300억 년에 한 번꼴”이라며 “정부 지원금을 대부분 안전성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R&D)에 투입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NIST2(SMR을 축소한 실험장비) 같은 첨단 안전성 테스트 시설 20곳을 운용하는 데 연 500억원을 사용한다. 페인터 연구원은 “뉴스케일의 SMR은 설치 단계에서부터 운전할 때까지 거대한 수조의 저장수에 잠겨 있다”며 “자연재해로 전력이 끊기거나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수조의 물이 냉각수 역할을 하며 열을 식힌다”고 말했다.신형 원전 개발에 몰리는 인재들
코밸리스에서 만난 뉴스케일 전문가들은 SMR의 안전성을 높인 비결로 끊임없는 실증 테스트와 막강한 인재 풀(pool)을 꼽았다. 팀 토바 공장운영 디렉터는 “책상에 앉아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테스트를 통해 습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점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FPGA(프로그래머블반도체) 시스템을 자체 개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외부 사이버 공격으로 원전 시스템이 중단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방어막이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원전 설계의 핵심 인력이 뉴스케일로 몰려들고 있다. 430명의 인력 중 석사급 이상 엔지니어가 146명이다. 페인터 연구원은 “미 해군에서 일하며 핵잠수함 기술 등을 다뤘던 베테랑 인력도 전체 엔지니어의 20%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뉴스케일 SMR의 또 다른 강점은 경제성이다. 크기가 작아 활용되는 핵연료가 기존 대형 원전보다 훨씬 적은 데다 안전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넓은 부지를 확보할 필요가 없다. 뉴스케일에 따르면 SMR 사고 발생 시 대피 지역은 가로, 세로 230m가량이다. 반경 18㎞인 기존 원전과 차이가 확연하다.

건설비용도 저렴하다. 토바 디렉터는 “SMR 12개로 구성되는 출력 924㎿ 소형원전 하나를 건설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약 2년8개월, 건설비는 33억달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2200㎿짜리 대형 원전 1기를 지으려면 6년 이상이 걸리고, 건설비도 90억달러를 웃돈다. 페인터 연구원은 “샌프란시스코 전체 면적(127㎢)의 100분의 1 정도 땅만 있으면 SMR을 건설할 수 있다”며 “SMR 1기의 전력량을 생산하려면 풍력 발전 244㎢, 태양광 발전은 44㎢가 필요하다”고 했다.

글로벌 SMR 시장은 급성장할 전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SMR 시장이 2035~2040년 최소 21GW, 최대 34GW까지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토바 디렉터는 “뉴스케일의 SMR 4기만 건설해도 오리건주 400만 가구의 전기 걱정이 사라진다”며 “탄소중립 시대에 SMR을 활용하지 않는 건 정치인들의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 SMR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압기 등을 일체화한 모듈 형태여서 크기가 작다. 사고 확률이 기존 대형 원전의 1만분의 1, 건설비는 절반 수준이어서 경제성과 안전성을 모두 갖춘 ‘꿈의 원전’으로 불린다.

코밸리스=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