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서울 시내 주요 지하철 역에는 도발적인 광고가 하나 떴습니다. 쿠팡이츠가 라이벌 배달의민족을 '저격'한 겁니다. "우아한 OO구민 여러분 쿠팡이츠로 오세요"란 문구를 담은 광고에는 배민을 연상시키는 민트색 글자에 민트색 헬멧을 쓴 사람까지 등장합니다.
'우아한'이라는 표현 또한 누가 봐도 배민의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을 빗댄 것이죠. 광고엔 20% 할인코드까지 담겨 있구요. 단건배달 서비스에서 앞서나간 쿠팡이츠가 비슷한 서비스인 '배민1'에 추격 당하자 배민 소비자를 끌어오기 위해 판촉광고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배민은 이 광고가 나가자 내부적으로 '부글부글' 끓었다고 합니다. 쿠팡이츠 광고가 도를 넘은 것 아니냐는 거죠. 유통업계 관계자는 "통상 경쟁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저격하는 방식의 광고가 등장하면 비슷한 광고로 맞불을 놓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배민은 논의 끝에 맞대응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배민이 아예 이 광고를 무시한 건 아니었습니다. 지난 29일 배민 공식 인스타그램에 쿠팡이츠가 등장한 건데요. 배민이 진행한 '2021 배달의민족 패러디 어워즈'에 쿠팡이츠가 '수고했상' 수상자로 선정된 겁니다. 배민의 배달이 캐릭터를 패러디해 졸업사진을 찍은 의정부고 학생들이 ‘내가 배달이가 될 상’을 탔고 슈퍼카 맥라렌을 민트색으로 도색한 차주가 '부럽상'에 선정됐는데, 쿠팡이츠를 '수고했상'으로 뽑은 것은 배민식 유머로 불편함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배민이 만든 '수고했상' 카드뉴스에는 '우리..같은 민족이었어..?' 라는 문구도 나옵니다. 쿠팡이츠가 민트색과 '우아한'이라는 배민 상징을 저격광고에 동원한 것을 '쿠팡이츠도 알고 보니 배달의민족이네'라는 뜻으로 비꼰 것입니다. 배민 관계자는 "이번 어워즈는 더욱 다양한 패러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배민의 문화 요소를 즐겼으면 하는 취지"라면서도 "그렇다해도 금도(禁度)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또한 동시에 담기 위해 기획했다"고 쿠팡이츠를 겨냥했습니다.
배달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민과 쿠팡이츠는 시장에서 그야말로 '격돌'하고 있습니다. 쿠팡이츠가 쿠팡 특유의 무지막지한 투자로 배민을 가시권에 두자 배민 또한 쿠팡이츠의 상징과도 같던 단건배달을 시작하며 맞불을 놓았죠. 최근엔 배달시장뿐 아니라 퀵커머스(쿠팡이츠마트 VS B마트), 식자재 시장(쿠팡이츠딜 VS 배민상회) 등으로 전선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배달 플랫폼들이 모두 대규모 적자를 지속하면서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플랫폼들은 현재 수수료 기준으로는 단건배달은 하면 할수록 손해라고 설명합니다. 시장의 '기본값'이 단건배달이 된 게 반갑지만은 않은 셈이죠. 단건배달의 창시자 쿠팡이츠가 얄밉게 보일만도 합니다.
2021년에도 배달 플랫폼들은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 확실시됩니다. 2022년은 어떨까요. 출혈 경쟁 끝에 누구 하나가 두 손을 드는 한 해가 될지, 공존의 계기를 만드는 한 해가 될지 관심이 갑니다.
박한신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