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낸 스타트업 대표들의 구질구질했던 뒷얘기

입력 2021-12-29 22:37
수정 2021-12-30 11:30
스타트업 성공담은 대개 이렇다. 젊은 나이로 수천억원대의 자산가 반열에 오른 스타트업 A 대표. 불굴의 도전 정신을 타고난 그는 비범한 학창 시절을 거쳐 명문대 공대를 졸업하고 창업에 뛰어든다. 자잘한 실패도 있었으나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마침 찾아온 기회와 탁월한 기량이 맞물려 '대박'을 터뜨린다. 나름대로 읽는 재미는 있지만 별 영양가는 없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의 일대기를 읽는다고 실제 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그저 감탄하는 데 그칠 뿐이다.
《창업가의 답》도 마찬가지로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가의 이야기가 주제다.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는 성호철과 임경업이 시장에 안착한 스타트업 창업가 12인과 만나 나눈 대화를 엮은 책이다. 하지만 내용은 일반적인 성공담과 다르다. 치열한 노력 끝에 도달한 실패, 수억원에 달하는 사채를 떠안고 지새운 불면의 밤, 몇 년 씩 피를 말리며 계속되는 ‘데스 밸리’(스타트업이 사업 확장 시기에 매출 부진과 자금난을 겪는 현상)의 고통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다.

저자들이 소개하는 창업가들은 ‘맨 땅에 헤딩’을 거듭한 끝에 기어이 활로를 찾아낸다.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게 아니라 실패 덕분에 성공의 단초를 발견한 사례가 적지 않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가 단적인 예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한 새벽배송 스타트업은 천신만고 끝에 궤도에 오르나 싶었지만 결국 엎어졌다. 회사를 나온 직후 떠난 미국 여행에서 도둑이 차 유리를 깨고 짐을 몽땅 훔쳐가는 봉변까지 당했다. 하지만 빨래만은 남아있는 데 착안해 비대면 세탁 서비스인 런드리고를 시작했다. ‘집 앞에 빨래를 둬도 아무도 안 훔쳐갈 것’이라는 논리였다.

각 장에 앞서 나오는 짧은 글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품질을 앞세워 신선식품 배송 시장을 빠르게 잠식한 정육각 사례를 소개하기에 앞서 “문제를 해결할 은 총알은 없지만 납 총알은 있다”(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창업가 벤 호로위츠)는 말을 소개하는 식이다. 천재적인 발상으로 만들어내는 혁신은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더 싸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다. KAIST를 졸업한 정육각 창업자 김재연이 창업 초기에 직접 돼지고기를 썰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도전하라’, ‘고객의 사소한 페인 포인트(불편 요소)에 주목하라’ 등 거칠게 요약한 교훈은 그리 새롭지 않다. 하지만 “고객이 열광하는 걸 보면 뇌에서 도파민이 나오는데 그 쾌감이 너무 좋아서 평생 스타트업 창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윤형준 캐플릭스 대표)는 고백에서부터 “동네 커뮤니티를 복원하고 싶다”(김용현 당근마켓 공동대표)는 돈 안되는 꿈까지, 인터뷰를 통해 캐낸 창업자들의 순수한 열정이 일종의 감동을 선사한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용기를, 직장인들에게는 쳇바퀴같은 일상을 견뎌낼 온기를 전하는 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