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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전 세계 기업들이 12조달러(약 1경4250조원)가 넘는 자금을 끌어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 규모다. 회사채 매입 등 각국 중앙은행의 경기부양책으로 자산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이 공급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기업의 유례 없는 ‘유동성 파티’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사상 최대 자금 조달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올해 세계 기업들은 주식·채권 발행, 신규 대출 등을 통해 12조1000억달러를 조달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규모다. 코로나19 사태 전인 2019년에 비해서는 25% 넘게 증가했다. 미국 기업들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5조달러를 조달했다.
전체 회사채 발행액은 5조5600억달러 수준으로 집계됐다. 규모는 소폭 줄었지만 투기등급 채권인 정크본드 판매가 17% 늘어난 650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 중앙은행(Fed), 유럽중앙은행(ECB) 등이 회사채를 대거 매입하면서 채권 수요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채권 가격이 상승(채권 금리는 하락)해 기업의 자금 부담이 줄면서 회사채 발행이 손쉬워졌다는 분석이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신규 대출은 5조1000억달러로 불어났다. 레버리지론(신용도가 낮은 투자 부적격 기업에 대한 자산 담보 대출) 규모는 지난해보다 두 배 늘어난 6140억달러를 기록했다. 인수합병(M&A)을 위한 대출도 활발해졌다. 블랙스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바이아웃(경영권 인수) 사모펀드 업체들이 올해 1조1000억달러를 빌린 것으로 나타났다.
신주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지난해보다 24% 증가한 1조4400억달러에 달했다. 특히 미국 증권시장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지난해와 견줘 두 배가량 급증했다. FT는 미국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리비안(약 137억달러)과 한국 e커머스업체 쿠팡(약 45억5000만달러)이 올해 IPO 흥행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다만 신규 상장사의 주가는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뉴욕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주가를 추적하는 르네상스IPO지수는 올 들어 8% 하락했다. 이 지수가 출시된 2009년 이후 S&P500지수와 비교해 가장 저조한 성적이라고 FT는 설명했다. 유동성 잔치 이어질까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글로벌 기업에 풍부한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 투자은행 BNP파리바의 크리스 블룸은 “올해는 블록버스터급 해였다”며 “내년에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매년 시장이 엄청난 속도로 쪼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시장은 여전히 건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M&A 시장은 내년에도 활기를 띨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현재 550개 이상의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 인수 대상을 찾고 있다. 이들 스팩은 내년 말까지 인수 대상을 찾아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브래드 밀러 UBS 미주자본시장 공동대표는 “스팩 시장은 매우 특별하다”며 “현재 상당히 많은 기업들이 M&A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FT는 “이들 회사의 성패는 스팩 현상이 지속될지 아니면 2020년 이전처럼 후퇴할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