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world View] 2022 임인년, 세계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입력 2021-12-28 17:13
수정 2021-12-29 01:20
각국 중앙은행이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은 과수원 농부가 사과 농사를 짓는 일에 흔히 비유된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엄동설한을 뚫고 여전히 강추위가 매서운 이른 봄날에 사과나무에서는 어렵게 ‘어린싹(green shoots)’이 돋아난다. 어린싹이 튼튼하게 자라 가을에 풍성한 ‘과일(golden goals)’을 맺도록 농부는 그때마다 변하는 생육 여건에 맞게 물과 공기, 그리고 거름을 잘 조절해 줘야 한다. 어느 하나 잘못될 경우에는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로 죽게 된다. 인플레에 이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하이먼 민스키의 리스크 이론상 가장 위험하다는 ‘아무도 모르는(nobody knows)’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작년 한 해 세계 경제는 ‘원시형 경제’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이먼 쿠즈네츠가 국민소득 통계를 개발한 193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I’자형, ‘L’자형, ‘W’자형, ‘U’자형, ‘나이키형’, ‘V’자형, 심지어는 ‘로켓 반등형’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예측 시각이 나오면서 결국은 작년 성장률이 -3.5%까지 추락했다.

올해 1분기까지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암울했던 세계 경제가 2분기 들어서는 갑자기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었다. 더욱 혼돈에 빠지게 한 것은 코로나발 인플레가 같은 통화정책 시차(미국의 경우 9개월∼1년) 내에서 모든 가능성이 한꺼번에 거론되는 ‘다중 복합 공선형’으로 이 또한 처음 나타난 원시형이라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 2년이 지나면서 세계 경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인플레의 실체를 알아보기 위해 올해 2분기 이후 숨 가쁘게 전개된 과정을 되돌아보면, 지난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인플레 논쟁이 시작됐다. ‘일시적이냐’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던 인플레 논쟁이 지난 7월 말 2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이 높게 나오자 곧바로 하이퍼 인플레 우려로 돌변했다.

하이퍼 인플레 우려도 잠시, 세계 공급망 차질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올해 여름 휴가철 종료 이후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슬로플레이션’ 가능성이 제기됐다. 신조어인 슬로플레이션의 의미를 알아갈 무렵 3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이 2.0%(확정치는 2.3%)로 급락한 것으로 나오자 2차 오일 쇼크 직후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 악몽이 재연됐다. 그린 슛 단계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은 여전히 확산일로에 있는 코로나에 각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부터 전제돼야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코로나 사태가 악화해 각국이 재봉쇄 체제로 돌아가는 경우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거의 모든 정책 수단을 소진한 점을 감안하면 시든 잡초보다 더 어려운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코로나 사태가 말끔히 해소되는 경우다. 화이자, 머크가 경구용 치료제를 개발해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 시각이 압도적이다. 만에 하나 코로나 사태를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인플레 등 숙취(hangover) 현상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위드 코로나’ 시나리오다. 시스템 문제에서 비롯된 종전 위기와 달리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 쇼크인 코로나 사태는 재봉쇄만 되지 않는다면 급진적인 출구전략을 추진하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시든 잡초에 해당하는 ‘에클스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작다. 에클스 실수란 1930년대 당시 미 중앙은행(Fed) 의장인 매리너 에클스가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추진하다가 경기를 망쳐 대공황을 초래한 사례를 말한다.

팬 차트 식으로 각국의 인플레 정도와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을 판단해 보면 대부분 선진국은 중심축(pivot state)에 몰려 있다. Fed를 시작으로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도 출구전략을 곧바로 추진할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일부 신흥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선진국 출구전략에 따른 예방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인플레와는 크게 연관이 없다.

문제는 이 시나리오로 인플레를 잡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수준과 중장기 성장 기반의 재확보 여부는 숙취 현상을 얼마나 순조롭게 해결할 것인가에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요인분석(factor analysis)을 통해 코로나발 인플레 성격을 보면 공급 측 요인이 더 큰 점을 감안할 때 주로 수요 측 인플레 대책인 출구전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년에도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 즉 테크래시를 강화하는 추세 속에 각국이 디지털 콘택트 육성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트워크만 깔면 갈수록 공급 능력이 확대되는 이른바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콘택트가 발전하면 인플레와 출구전략 추진에 따른 성장 훼손을 동시에 잡을 수 있다.

‘3차 대전’(헨리 키신저), ‘2차 냉전’(니얼 퍼거슨)이란 경고가 나올 정도로 악화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경제패권 다툼은 내년에도 여전히 세계 경제 운명을 좌우할 최대 현안이지만 종전과는 다른 형태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 모두 인플레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가치사슬(GVC), 공급망(GSC) 붕괴 등과 같은 외부 충격에 따라 수입물가가 상승할 때는 자국 통화 가치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당장 가져갈 수 있는 방안이다. 인플레 쇼크가 처음 발생한 지난 5월 이후 위안화 가치는 10% 정도 절상됐다. 한때 90선 밑으로 떨어졌던 달러인덱스도 최근 들어 96선을 넘어섰다.

인도네시아·터키·남아공 등 위기 조짐경제권역별로 본다면 신흥국이 문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자국 통화 강세를 유도한다면 금리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캐리 자금의 이탈로 신흥국들이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금융위기 당시 조달한 달러 부채 만기가 2025년까지 매년 4000억달러가 돌아오는 점이다.

임인년을 목전에 두고 일부 취약 신흥국에서는 금융위기 조짐이 일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에게 알려진 모리스 골드스타인 지표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외채상환계수로 신흥국의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판단해 보면, 2013년 테이퍼링 추진 당시 탠트럼 발생국인 ‘구취약 5개국(인도·인도네시아·터키·남아공·브라질)’과 2015년 금리인상 당시 탠트럼 조짐이 일어났던 ‘신취약 5개국(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남아공·콜롬비아)’에서 높게 나온다.

인플레와 함께 또 하나의 숙취 현상인 ‘K’자형 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도 내년 세계 경제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대처와 디지털 콘택트 진전, 그리고 인플레 등으로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횡재 효과(bonanza effect)’와 ‘상흔 효과(scarring effect)’가 뚜렷하게 나타나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지는 추세다.

내년에 ‘공유 경제’ 논의가 급진전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K자형 양극화 주요인인 횡재 효과와 상흔 효과는 자신의 능력과 결부되지 않은 면이 많아 경제게임 결과를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이견이 많다. 능력 이상 얻은 것은 거둬 능력과 관계없이 피해를 본 경제 주체에 배분해 줘야 한다는 것이 최근 논의되는 공유 경제의 논리적 근거다.

‘공유 경제를 누가 담당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모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발생하는 제반 문제들이 준(準)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어 ‘국가와 민간’ ‘계획과 시장’ 어느 한쪽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와 민간, 계획과 시장이 함께 풀어가는 혼합경제 체제가 자리잡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도 ‘제3의 길’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체감물가 뛰는 스크루플레이션 예고
새 정부 최대 현안으로이달 초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 송년회에서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내년 한국 경제가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을 겪을 것”이라고 충격적인 화두를 던졌다. 스크루플레이션이란 미국 헤지펀드 업체인 시브리즈파트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가 처음 언급한 것으로 쥐어짠다는 의미의 ‘스크루’와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스크루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과 구별된다. 후자는 거시경제 차원으로 경기가 침체되면서 지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지만, 전자는 미시적인 차원으로 쥐어짤 만큼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체감 물가, 즉 장바구니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전자가 나타나면 후자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는다.

예측기관들도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에 한국 경제가 스크루플레이션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이 될 가계부채는 1800조원을 넘어 세계 10대 고위험군에 속한다. 가계부채를 갚을 능력인 원리금상환부담률은 7대 취약국 중에서도 가장 낮고 저소득층일수록 더 떨어진다.

한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떨어져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한 국가다. 통화유통 속도, 통화승수와 같은 경제활력지표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지 오래됐다. 권종별 현금 결제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5만원권 회수율도 낮다. ‘좀비 국면’이다.

정치권에서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정책을 남발하고 있는 것이 돈이 돌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계는 지원금을 받아도 소비하기보다 저축하고 기업은 투자보다 현금 확보에 열을 열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돈맥경화가 장기간 지속되면 ‘수수께끼(conundrum)’나 ‘역설(paradox)’과 같은 종전의 이론과 관행으로 설명할 수 없는 뉴노멀 현상이 나타나 정책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이때 정책 수용층마저 SNS 등을 통한 연대로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면 경제는 더욱 혼돈에 빠진다.

혼돈 시대에 한국 경제는 유독 위기설에 민감하다. 대내외 여건이 악화할 때마다 위기설이 판치는 것은 ‘통계 수치상의 위기’가 아니라 정책 결정과 경제 운용 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시스템상의 위기’에 연유된다는 점이다.

특히 스크루플레이션이 무서운 것은 국민이 느끼는 경제 고통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점이다. “손에 들어오는 소득이 줄어 쥐어짜도 체감 물가가 올라 살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 경기를 얘기하면 국민들 입에서 처음 떨어지는 이 하소연을 새 정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은 민생경제 안정에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