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변화를 읽지 않은 애플의 딜레마

입력 2021-12-28 17:08
수정 2021-12-29 01:06
‘애플이 차이나 수렁에 빠졌다.’

아이폰 생산을 너무 중국에 올인해 탈(脫)중국도 못하고, 베이징에 발목이 잡힌 애플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트위터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에 맞서 중국 시장을 과감히 박차고 나왔다. 그러나 미국에선 개인정보보호법을 빌미로 대테러용으로 아이폰 암호해독 기술을 요구한 연방수사국(FBI)의 요청까지 거부한 애플이 중국에선 그렇게 단호하게 행동하지 못했다.

애플이 이런 딜레마에 빠진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애플의 경영권을 잡은 팀 쿡이 스티브 잡스의 후광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 시장에 무리하게 승부수를 던졌기 때문이다. 2014년 애플이 대규모 투자를 하려 할 때 중국 전문가들은 ‘차이나 리스크’를 경고했다. 새로 권력을 잡은 지도자가 장쩌민, 후진타오 같은 전임자들과 다르게 중국을 이끌고 갈 불안한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런 애플의 시행착오를 우리 기업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내년도 경영 전략을 세울 때 우리 기업이 고려해야 할 세계 경영환경의 지각변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우리가 지난 20년간 누려왔던 세계 자유무역 체제가 무너지고 있다. 그간 세계의 자유무역은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속에서 미국과 중국 경제라는 쌍두마차가 이끄는 선순환 덕분이었다. 그런데 미·중 패권전쟁으로 심한 무역전쟁을 하며 미·중 경제가 갈라서고, “WTO는 그간 중국에 이익만 줬다”고 말하며 미국이 WTO로부터 등을 돌렸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두 나라 교역에서 평균 관세율이 높아졌고, 팬데믹 초기 마스크 대란 등을 겪으며 각국이 건강 등 국민 기초생활과 국가 안보에 관련된 많은 무역을 관리무역 체제로 전환했다.

둘째, 기업은 ‘가장 값싸게 제품을 생산하는 나라에 투자하면 된다’는 세계화의 환상이 깨지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으로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생산공장이 아니며, 외국 기업들이 앞다퉈 탈중국하고 있다. 당분간 세계 경제는 반세계화로 역주행할 것이다. 미국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중국의 군산복합기업에 대한 투자를 규제한다. 화웨이 같은 특정 기업엔 반도체 장비 수출도 금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호주, 영국 같은 국가들도 이런 행보를 같이하고 있다. 일본 요코하마에 있는 중소기업은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데 주로 쓰는 ‘스프레이 드라이어’를 아무 생각 없이 중국 기업에 팔았다가 회사 간부가 구속되는 수난을 당했다. 이 장비가 바이오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갈수록 기업의 글로벌 경영을 얽어맬 빅데이터 정보 전쟁이다. ‘빅데이터를 지배하면 인공지능을 지배하고, 인공지능을 지배하면 미래를 지배한다!’ 이 명언의 진가를 먼저 알아차린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예를 들어 베이징게놈연구소(BGI)는 세계 최대의 바이오 관련 정보를 축적해 이 분야에서 미국을 앞섰다.

문제는 중국 정부가 2017년 국가정보법과 사이버보안법을 만들어 알리바바 같은 자국 기업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의 고객정보까지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고전하는 기업은 테슬라다. 8개의 카메라와 12개 초음속 센서를 단 테슬라 전기차는 중국 정부가 보기에 군사시설까지 마음껏 촬영하는 ‘움직이는 스파이 터미널 시스템’이다. 테슬라의 방대한 정보를 통제하려 하는 중국 정부와 이를 공개하지 않으려 버티는 테슬라가 치열한 정보 전쟁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훌륭한 기업은 시장중심형 경영으로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면 됐다. 그러나 새해부터는 소위 헤게모니 경영을 해야 한다. 미·중 패권전쟁, 국가의 역할 변화, 정보전쟁 등으로 인한 글로벌 경영의 외생변수인 정치적 리스크를 잘 통제하고 필요하면 적극 활용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자유무역의 완벽한 후견자가 아니다. 특정국, 특정 기업과의 거래를 규제하려 하며 과거에는 기업 고유의 권한이었던 기술이전까지 제한한다. 또한 기업의 고유자산인 정보까지 넘보고 있다. 변화를 읽지 않는 기업은 애플처럼 헤게모니 게임의 덫에 빠지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만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