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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UAE)가 경제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슬람 율법을 포기하고 새 사회 규범을 도입한 데 이어 자국 부자 가문의 유통시장 독점권을 없애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중동의 경제 중심으로 도약하겠다는 열망이 UAE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UAE 정부 관계자들은 최근 일부 부자 가문을 만나 현지 수입물품 독점 판매권을 없애겠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UAE 관료는 “개별 가문이 권력을 쥐고 재산 증식의 특혜를 받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경제 구조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는 취지다.
해외 기업이 UAE에서 상품을 팔려면 현지 파트너를 지정해야 한다. 한번 맺은 유통 계약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자동 갱신된다. 알푸타임, 알로스타마니 등 유명 부자 가문들의 기업이 다국적기업과 손잡고 시장 지배력을 확대해온 배경이다. 이들이 UAE 민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이른다. 일자리의 4분의 3을 부자 가문 기업들이 창출하고 있다.
UAE 정부는 자동 갱신 조건을 없애 이들의 독점적 지위를 깨기로 했다. 기존 계약이 끝나면 다국적기업은 직접 상품을 유통할 수 있다. 현지 대리인을 다른 사람으로 바꿔도 된다. 시행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하빕 알물라 베이커매켄지로펌 중동지부장은 “UAE 경제에서 최대 비중을 차지하는 부자 가문 기업에 손을 대는 것은 가장 다루기 어려운 금기 중 하나”라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제 전쟁이 치열해지자 UAE는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UAE는 술과 마약 규제를 완화하고 미혼부부의 동거를 인정했다. 올해는 이슬람력을 따랐던 금·토 휴일제를 포기하고 서구 국가에 맞춘 토·일 휴일제로 바꿨다. 이슬람교도들의 금요일 오후 기도 시간을 배려해 주 4.5일제를 도입했다. 외국인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다국적기업 본사를 수도 리야드로 이전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석유에 집중된 자국 경제 구조를 다각화하기 위해서다.
UAE 정부 방침이 전해지자 부자 가문들은 두바이 왕가에 로비전까지 펼치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다국적기업들이 다른 중동 국가에서 파트너를 찾아 경쟁국 기업이 부를 독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라 지부장은 “독점 가문이 소유하던 사업이 둘 이상의 업체로 분산되면 소비자는 혜택을 볼 것”이라면서도 “부자 가문도 대규모 투자를 했기 때문에 사업 전환까지 시간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