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 열풍에…에일, '라거 제국' 넘본다

입력 2021-12-27 17:17
수정 2022-01-04 15:30
에일 맥주가 라거 일색인 국내 맥주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에일 중심의 수제맥주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편의점 등 일선 매장에서 라거 맥주를 압도하는 판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8년부터 수제맥주의 유통 판매가 허용되고 올초부터 위탁생산까지 가능해진 게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030서 라거 제친 에일 맥주 27일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올해 에일 맥주의 매출 증가율은 라거 맥주를 크게 웃돌았다. 편의점 CU에서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에일 제품군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64.9% 늘었다. 라거 증가율(18.7%)의 세 배를 넘는다. 세븐일레븐도 이 기간 에일 매출이 42.1% 증가해 라거(14.9%)를 뛰어넘었다.

전체 맥주에서 에일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세븐일레븐에서 전체 맥주 매출 중 에일 비중은 2019년 22.9%에서 올해 30.3%로 상승했다. GS25는 같은 기간 에일 비중이 15.9%에서 19.9%로 늘었다.

젊은 층이 주 소비자다. GS25에서는 올 들어 2030의 에일 구매가 라거를 제쳤다. 30대의 에일과 라거 구매 비중은 각각 38.8%와 31.1%로 에일이 7.7%포인트 높았다. 20대에서도 에일(27.6%)이 라거(23.3%)를 앞섰다. GS25 관계자는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젊은 층이 목넘김이 부드러운 에일 맥주를 찾는다”고 말했다.

저온발효 방식인 라거는 청량감이 좋고 유통기한이 긴 반면 상온발효인 에일은 도수가 높고 색과 향이 강하며 유통기한은 상대적으로 짧다. 라거는 대형 냉장 설비가 필요해 오비맥주 등 대기업이 주로 생산한다. 에일 생산 주역은 소규모 브루어리(양조장)들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브루어리들은 대기업 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해 맛과 향이 다양한 에일로 승부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지난해 1180억원으로 2019년(800억원) 대비 47.5% 증가했다. 협회 관계자는 “제품 가짓수 기준 브루어리들이 생산하는 수제맥주의 90% 이상이 에일 맥주”라고 말했다. 규제완화로 수제맥주 ‘봇물’버드와이저 등으로 대표되는 라거는 세계 맥주 시장의 약 70%를 차지한다. 국내에선 라거 점유율이 업계 추산 80% 이상이다. 최근 주류 규제가 완화되며 에일 시장도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2014년 주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소규모 양조장도 맥주를 수제맥주 전문점 등 다른 매장에 팔 수 있게 됐다. 2018년에는 편의점과 마트 등 유통업체 입점이 가능해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2018년부터 점포에서 수제맥주를 들여왔다”며 “초기엔 상품 수가 6~7종이었지만 현재 70종이 넘는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건 지난해 주세법 개정이다. 맥주와 막걸리 세금 체계가 제조단가에 매기는 종가세에서 생산량 기준인 종량세로 바뀌었다. 다품종 소량생산인 데다 다양한 향을 내기 위해 원가가 높았던 수제 에일 맥주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신제품 출시가 크게 늘었다. 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수제맥주 양조장 수는 2018년 말 126개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159개에 달한다.

올초부터 브루어리들의 맥주 위탁생산이 가능해지며 ‘수제맥주 대량생산’의 길이 열렸다. 수제맥주 제조업체 세븐브로이는 롯데칠성음료와 곰표 밀맥주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국내 첫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대기업들도 이 시장에 눈독 들이고 있다. 롯데칠성 외에도 오비맥주는 지난해 수제맥주 협업 전문 브랜드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를 내놨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