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동 수단의 '플랫폼'으로 진화
전통적인 내연기관 제조사 가운데 전동화에 가장 앞선 곳은 미국 GM이다. 경쟁사들이 여전히 내연기관에 매진할 때 GM은 오래 전부터 홀로 미래 전기차 집중 전략을 내세우며 주저 없이 내연기관 제품의 순차적 단종과 전기차 볼트를 내놨기 때문이다.
첫 시작인 2010년 등장한 볼트(VOLT)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레인지 익스텐더로 출시됐다. 플러그를 꽂아 충전된 전력이 소진되면 내연기관이 휘발유를 태워 전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2015년 쉐보레는 BEV로 분류되는 볼트(BOLT)를 앞세워 전기차 의지를 강하게 실천했다. BEV 볼트는 국내에서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많이 이끌어냈고 가능성을 확인한 쉐보레는 올해 볼트(BOLT) 부분변경 및 SUV에 볼트 EV, 볼트 EUV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동화에 한발 다가섰다.
그런데 이 같은 GM의 거대한 미래 청사진을 제시한 인물은 2013년 GM의 CEO로 선임된 메리 바라 회장이다. 그는 최고 경영자에 오른 이후 거침없이 GM의 미래는 전동화에 달려 있다는 말을 쏟아냈다. 당시 GM의 첫 BEV 볼트(BOLT)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판매가 미진한 내연기관 차종은 과감하게 단종하고 그 자리는 새로운 전동화 제품이 차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실제 쉐보레 크루즈를 비롯해 몇몇 내연기관 차종이 단종됐고 캐딜락과 쉐보레 전동화 제품이 그 자리를 속속 메우는 중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GM의 모빌리티 미래 전략은 '트리플 제로(Triple Zero)'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트리플이란 '탄소배출', '교통체증', '교통사고'를 의미하며 세 가지가 전혀 없는 '제로(0)'를 향해 가겠다는 뜻이다.
먼저 탄소배출은 전동화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이미 시장에 내놓은 볼트(BOLT) EV 외에 허머 EV, 실버라도 픽업 EV, 캐딜락 리릭 EV, 캐딜락 셀라스틱 EV 등이 곧 시장에 등장한다. 이를 위해 지난달 디트로이트에서 전기차 전용 공장 '팩토리 제로(Factory Zero)'의 가동에 들어갔다. 이를 시작으로 점차 내연기관 공장을 전기차 전용 시설로 바꾸게 된다. 특히 팩토리 제로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전기 SUV 및 픽업이 주력인데 에너지 전환과 무관하게 소비자들의 SUV 선호도가 높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대형 전기 SUV 시장에 뛰어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 같은 전기차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전동화 플랫폼은 '얼티엄(Ultium)'이라는 이름으로 활용되는 중이다. 범용성이 뛰어나 GM 제품 외에 혼다 등도 해당 플랫폼을 활용하는데 필요하면 다른 제조사에도 얼티엄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바 있다. '얼티엄'을 모든 이동 수단의 플랫폼으로 육성, 시장 내 탄탄한 입지를 굳히는 전략이다.
교통체증 및 사고 제로는 지상의 경우 자율주행으로 해결하고 나아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자율주행 비행체도 투입한다. 특히 자율주행은 쉐보레 볼트(BOLT) EV를 기반으로 GM 자회사 크루즈가 내놓은 로봇택시 '크루즈 오리진(Origin)'이 수행한다. 크루즈의 자율주행 기술은 지난해 미국 내 소비자단체인 컨슈머리포트가 테슬라 오토파일럿보다 앞선 기술로 평가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물류 부문의 전동화 전략도 실행 중이다. 단거리 운송 보조 전기 팔레트 EP1이 물류센터에서 배송차까지, 그리고 배송차에서 주문자의 집 앞까지 물건을 운반한다. 쉽게 보면 퍼스트 및 라스트 모빌리티 전용 이동 수단인 셈이다. 그리고 EP1을 이동시킬 대형 전기 화물차 EV600은 얼티엄 배터리를 활용해 최장 418㎞를 주행할 수 있다. 120㎾ 고속 충전이 가능하고 적재량은 1만7,000ℓ에 달해 물류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이 프로젝트에 페덱스가 참여하는데 EV600 50대를 시범 운용키로 했다.
수소 기술도 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소 연료전지로 전기차를 넘어 항공, 철도까지 사업 영역 확장을 꾀하는 중이다. 오래 전부터 수소 연료전지 개발을 위한 별도 연구소를 운영해 왔던 만큼 확대는 빠른 시간 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러브헤어 에어로스페이스에는 항공용, 웹텍과는 철도용, 그리고 나비스타에는 대형트럭 연료전지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 같은 GM의 미래 모빌리티 전략이 위협적인 이유는 에너지 전환 및 이동의 모든 분야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그리고 가장 시장 규모가 큰 미국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확보한 기술 및 데이터 등으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것 자체가 규모의 경제이니 말이다. 제 아무리 미래가 밝아도 수익이 중요하고 이익을 내려면 규모의 경제는 반드시 필요한 탓이다.
이런 가운데 GM의 글로벌 연구개발의 일부 기능이 한국에 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다. 한국 또한 미래 모빌리티 산업 전환 속도가 빠른 만큼 한국지엠이 현명하게 발을 맞춘다면 생산 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서다. GM 미래 전략의 본격 전개 시점으로 일컬어지는 2022년에 국내에도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