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도와 상관없이 감옥에 가야 할 확률이 생겼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다음달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처벌법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경제 문제는 형사적 접근보다 경제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한다”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은 고의성이 명확한 형사사건과 달리 구속 등 형사처벌보다 과징금 등 행정 제재로 다루거나 인센티브 제공을 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서도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벌금, 세금을 물리겠다는 정책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혁신적인 감축 방법이 나올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 역기능 불러올 수도”최 회장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연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인터뷰에서 이례적으로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놨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법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역기능과 다른 문제가 발생해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형사처벌은 너무 과한 조치라는 뜻이다.
최 회장은 이날 “국회에서 제정되고 통과됐으니 따라야 한다”면서도 “부작용·역기능은 없는지 판단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경제계에선 경영책임자 판단이 모호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 회장은 정부의 탄소중립 방침에도 규제와 벌금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이 탄소를 더 줄일 아이디어를 내 전체 목표를 맞추면 되는 것”이라며 “정부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업의 탄소 감축을 유도할 시스템이 필요하고, 목표를 달성하며 산업계 부담도 줄이는 것이 민관협력 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역시 정부가 규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기업이 자율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강제하는 형태로 숙제처럼 규제나 요구 측면으로 접근하면 기업들이 반발하거나 적당히 하자는 ‘그린워싱’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정말 할 수 있는 건 뭔지 (정부가) 생각해야 한다”며 “이를 숙제라고 받아들이면 핑퐁 치는 것(서로 책임을 미루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정부·국회 ‘원팀’ 돼야”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건의할 정책으로는 규제 철폐와 인프라 조성을 꼽았다. 구체적으로 미래 성장을 위한 데이터 인프라 조성, 포지티브 규제의 네거티브 규제 전환, 민관합동 협력체계 가동 등 세 가지를 들었다.
최 회장은 “국가가 한 방향으로 서야 제도·시스템도 바뀐다”며 “‘원팀’으로 갈 수 있도록 국가의 방향이 먼저 제대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되면 거기에 맞춰 제도와 시스템도 바뀐다. 대선 후보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하려고 한다”고 했다.
내년 경제 전망에 대해서는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업종별 명암은 계속 대비될 것이며, 장기적인 임팩트가 올 시기”라고 예측했다. 다만 “한국은 제조업이 코로나로 셧다운되지 않았기 때문에 방역체계가 잘 작동한다면 내년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반기업 정서와 관련해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반성이 우선”이라면서도 “말 그대로 ‘정서’이고, 팩트에 기반하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인이 누구냐를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소통을 통해 반기업 정서가 어느 정도 해소돼야 기업 역할이 자리잡을 수 있고, 사회가 원하는 형태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보 관점으로 공급망 대응해야최 회장은 ‘경제 안보’ 관점에서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경제 안보도 국방 문제로 보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비전과 방향을 세우고 다른 나라와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수급과 공급망 문제에는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갈등 상황에서 변화가 있는 것으로 이제는 진영별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며 “공급망이 재편되는 것이므로 반도체 업계에 기회가 될 수 있고 위험으로 작용하는 것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단지 제품을 만들어서 밖에 파는 것만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새로운 성장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제는 많은 인구가 대한민국을 방문하게 하는 관광산업을 키우는 등 새로운 돌파구가 있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