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내년 1월부터 중고차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중고차 거래는 그동안 소비자들로부터 가장 불신을 받아온 분야 중 하나라는 점에서 공신력 있는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가세는 시장 투명화·선진화를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중고차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불량품이 넘쳐나는 ‘레몬 시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중고차 매매업자는 차량 상태를 정확히 아는 반면 소비자는 아무 정보가 없어 바가지 쓰기 딱 좋은 구조다. 그러다 보니 허위·미끼 매물, 침수·사고차 매물, 주행거리 조작 등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구매 직후 고장이 발견돼 차값의 3분의 1이나 되는 수리비 폭탄을 맞거나 심지어는 폭력 조직이 낀 중고차 매매 사기단에 속아 강매를 당했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까지 있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연맹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피해건수만 5000여 건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소비자 후생에 큰 보탬이 될 것은 자명하다. 해당 자동차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완성차 업체에서 중고차의 100~200여 개 항목을 정밀 점검, 수리 판매하는 ‘인증 중고차(CPO)’ 사업을 할 경우 품질과 가격에 대한 소비자 신뢰와 만족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이미 완성차 업체의 자동차 매장에서 신차와 중고차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입차 업체들이 직접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중고차시장 진입이 늦어진 것은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의 반발과 정부의 눈치보기 행정 때문이다. 중고차 판매업이 2019년 2월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풀리자, 중고차 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을 냈다. 그러나 동반성장위원회가 추천과정에서 부적합 의견을 낸 데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심의기한(올 5월)까지 넘긴 상태다. 여당과 중기부가 수차례 중재에 나섰으나 모두 결렬됐다.
동반위와 관련 부처들 의견을 고려할 때 중고차 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중기부는 심의를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가부간 결정을 빨리 내려줘야 한다. 소상공인 보호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판단잣대는 소비자 편에서 따져보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입과 관련한 서명을 받았을 때 단 한 달 만에 10만 명이 찬성 서명을 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