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에 ‘독자의 목소리’를 전달해줄 ‘제1기 한국경제신문 독자위원회’가 23일 출범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창달’이라는 목표 아래 57년간 달려온 한경의 역사에서 독자들의 쓴소리는 한경이 바른길을 걷도록 이끌어준 선생님 역할을 해왔다. 새롭게 출범한 독자위원회를 통해 한경은 보도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신문 제작에 더욱 폭넓게 반영할 계획이다.
제1기 독자위원회는 학계·산업계·법조계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지낸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았다. 기업인으로는 권영탁 핀크 대표, 박태훈 왓챠 대표, 오세천 LG전자 전무가 참여했다. 경제·경영 분야 석학으로는 강진아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와 손성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언론·미디어 분야 학자로는 박종민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가 독자위원이 됐다. 법조인으로는 임형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가 합류했으며, 숙명여대 1학년인 임성은 씨가 20대 독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박병원 위원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는 국내 대표 경제신문으로서 한경이 조명해야 할 사안과 보도 방향에 대한 위원들의 평가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한경이 미처 다루지 못한 사안에 대한 아쉬움과 따끔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참석하지 못한 일부 위원은 서면으로 의견을 전달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은 “한국경제신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창달이라는 목표를 두고 열심히 달려왔다”며 “독자의 시선에서 그동안의 보도에 대해 기탄없는 질책과 평가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독자위원회 회의는 연 5~6회 열리며, 다음 회의는 내년 2월 개최할 예정이다. ‘심층 보도’ 더욱 늘려야이날 위원들은 ‘국내외 경제적 이슈에 대해 언론은 얼마나 자주 심층 분석 보도를 하는가’를 질문했다. 위원들은 단발성에 그치는 보도보다 입체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보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오세천 위원은 “기업들은 사업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규제가 많은데, 규제의 방향성이 제각각이다 보니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라며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현재 정부의 규제가 지닌 문제점을 지적해주고, 나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줄 수 있는 분석 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한 가지 의제를 두고 장기간 추적할 수 있는 ‘라이프타임’ 태스크포스(TF)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저출산·인구소멸 문제처럼 한국 경제에 장기간 영향을 끼칠 사안에 대해서는 몇 차례 보도로만 그치는 것은 부족하다는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심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팀을 꾸려 이에 대한 전문성을 내재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제로페이·지방자치단체 배달앱을 포함해 정부와 지자체들이 내놓는 경제 정책이 많은데 이들의 영향을 6개월 이상 장기적으로 추적해 그 실태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며 “이런 심층·장기 분석 보도가 건강한 경제 정책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신관호 위원은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가 많은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심도 있는 면담으로 구체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경제학자들의 심층 분석을 소개하는 섹션을 넣고, 다양한 데이터 분석·그래픽과 곁들여 게재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젊은 콘텐츠’ 확보 필요위원들은 젊은 세대·젊은 기업을 위해 더욱 많은 콘텐츠 확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박태훈 위원은 “한국에서 유니콘 기업이 잇달아 탄생할 정도로 스타트업의 위상이 올라갔지만 국내 언론들이 이에 걸맞은 비중으로 보도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해외 업체들에 비해 국내 스타트업은 유난히 규제로 가로막히는 일이 많다. 한경이 이런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화두를 던져준다면 규제에 시달리는 기업들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임형주 위원은 “암호화폐·블록체인·NFT(대체불가능토큰) 등 디지털 경제에 대한 신뢰성 있는 콘텐츠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온라인을 통해 암호화폐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신뢰성이 떨어져 전통적인 경제신문이 정보 전달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투자 등에 관심이 높아진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위한 ‘눈높이 맞춤형’ 콘텐츠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 위원은 “기업들도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콘텐츠 제공 방식을 다양화하고 있다. 경제 공부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화두를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경제 기사에는 어려운 용어가 많기 때문에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친절함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인 임성은 위원은 젊은 세대에 다가가려면 섹션 기사를 더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 위원은 “학생으로서 전통적인 경제 기사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심도 있게 풀어간 섹션 기사는 이해하기 훨씬 쉬웠다”고 평가했다. 편집·레이아웃도 독자의 눈으로위원들은 기사 내용뿐만 아니라 지면 구성의 혁신도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독자의 시선에서 더욱 이해하기 쉽도록 지면 구성을 유연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오 위원은 “하나의 경제 사안에 대해 연속적으로 이어줄 수 있는 편집도 시도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통적인 분류에 따라 지면을 편집하면 하나의 사안이 여러 지면으로 나뉘어져 종합적으로 보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오 위원은 “연관성이 있는 기사들에 별도의 표식을 붙인다면 기업·증권·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을 독자가 연속적으로 읽을 수 있어 종합적인 이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위원은 “전통적인 일간지 판형 구성은 기사 간 거리가 멀어 집중도가 떨어진다. 보다 작은 판형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건의했다.
위원들은 한경에 대한 뼈아픈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손성규 위원은 “일부 언론사가 계열사를 띄워주기 위해 지면을 할애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이것이 과연 독자를 위한 편집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며 “한경도 경쟁사를 의식하기보다 독자를 위해 지면을 더 할애해달라”고 했다. 손 위원은 이어 “최근 언론들이 모두 비슷한 아이템만 좇는 경향이 있다. 메이저 언론사라면 우리 사회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박종민 위원은 “국내 미디어 지형이 플랫폼을 위주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한경 역시 미디어 중 하나로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에서 “독자위원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독자 의견을 수용해 기사화까지 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 달라”며 “한경이 시장경제 창달을 위해 애써온 만큼 독자위원회도 한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